조선일보 ‘분신 방조 프레임’ 보도에 언론학자들 “기본 원칙 안지켜”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신 당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가 이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담은 기사(‘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가 조선일보 지면에도 실린 17일 오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재차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 17일 자살 방조 혐의로 입건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건설노조, 언론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의 보도가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했다.
언론학자들은 조선일보의 기사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진실’을 강조하는 조선일보가 취재의 경위를 밝히고, 오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 대부분은 분신 상황 묘사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취재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CC(폐쇄회로)TV 영상인지 목격자의 전언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기사 말미에 당시 상황을 봤다는 목격자의 말이 익명으로 한토막 나올 뿐이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경찰 진술에 해당하는 공적 사실을 반박할 정도로 중대한 정보는 반드시 실명 취재원을 사용했어야 한다”라며 “고발의 중대성에 비례해서 취재원의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는 대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사용된 사진에 ‘합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에는 독자가 제공한 화면이라며 시너 통의 위치에 흰색 동그라미가 그려져있고, 시너 통이 합성돼있다.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편집지침에는 “편집자는 보도사진의 실체적 내용을 삭제, 첨가, 변형하는 등 조작해서는 안되고, 편집의 기술적 편의를 위해 부득이한 경우 최소한의 조작 기법을 사용할 수 있되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독자가 제공한 사실은 날 것 그대로 보도해야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시너 통을 합성해서 별도로 표시한 게 기자가 의도를 갖고 시너통을 강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다. 언론학 박사인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협력실 전문위원은 “권고 기준에는 자살 현장을 묘사하지 않고,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기준이 준용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창간 103년을 맞아 ‘가짜뉴스 홍수시대, 진실 좇는 저널리즘’ 특집 기사를 냈다. 당시 마이클 셔드슨 미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는 조선일보의 언론과 가짜 뉴스가 차별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큰 차이는 실수했을 때 사과하고 수정하느냐다”라고 답했다. 지난달 21일 조선일보는 미 폭스뉴스가 미국 대선 후 개표 조작 가능성을 보도한 이후 투·개표기 제조 업체가 고소해 1조원을 배상한 일을 다루는 사설에서 “거짓임이 명확하며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라며 “우리 사회에도 가짜 뉴스로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이들은 퇴출시킨다는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안 교수는 “조선일보 뉴스룸 내부에 확인 결과,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공언했던 것처럼 적절하고 신속하게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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