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밥 먹느라 못 와" 대신 콧줄 끼는 간호사들…'불법 업무' 뜯어보니

정심교 기자 2023. 5.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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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협회, 전국 병원에 면허증 반납 독려 공문 보내
면허증 반납, 지시 거부… 다음 주 초부터 본격화할 듯
대리 처방, 수술 부위 봉합 등 의사 업무 불법 자행 빈번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간호법 거부권 범국민규탄대회를 하루 앞둔 18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에서 관계자들이 익일 규탄대회에 쓰일 피켓 등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협회는 한 달간 간호사 면허증 반납운동을 갖고 19일 광화문에서 '간호법 거부권 규탄 및 부패정치 척결을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23.5.1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제부턴 법대로 하겠다."

법률을 지키고 따른다는 뜻의 '준법'은 지극히 당연한 국민의 의무이지만, 이제는 간호사들이 내놓은 강력한 '무기'가 됐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규탄하며 '준법'으로 투쟁하겠다고 맞서면서다.

간호협회가 내세운 준법 투쟁은 그간 간호사가 따라온 '의사의 불법 지시'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부터 간호사가 대리처방, 대리 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L-튜브(콧줄) 및 T-튜브(기도줄) 교환, 기관 삽관, 봉합, 수술 수가 입력 등에 관한 의사의 불법 지시를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의료법에 근거했을 때 이들 업무의 주체는 누구인 걸까.

우선 '의사'는 이들 모든 업무를 직접 수행할 수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처방, 수술, 동맥 채혈, L-튜브(콧줄) 및 T-튜브(기도줄) 교환, 기관 삽관, 봉합은 의료법에 따라 '의사만' 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고유 업무인 이들 업무에 대해 그간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간호사도 암암리에 도맡아왔다.

대한간호협회가 18일 각 의료기관에 배포한 불법 업무 리스트. /표=대한간호협회

이처럼 의사 고유의 업무를 대신하는 존재를 PA(진료지원인력; Physician Assistant)라고 부른다. 미국에선 법에서 인정하는 의료인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의료인에는 PA가 없다. 따라서 국내 병원에서 PA 역할을 맡으면 불법이지만, 이미 국내 'PA'는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30년째 근무하는 A(여·51) 씨는 "수술실에서 장기를 절제하고 봉합하는 수술은 집도의(주로 전문의)가 주도하고는 있지만, 수술을 마칠 무렵 절개했던 피부를 봉합할 때는 보통 전공의가 담당하는데, 전공의가 부족해진 이후부터는 집도의가 'PA'에게 봉합을 맡기고 나가는 일이 흔해졌다"고 털어놨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맡아온 타 직역의 업무로는 의사뿐 아니라 임상병리사·보건의료정보관리사·방사선사 등의 업무까지 포함돼 왔다. 초음파 검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 정맥 채혈과 심전도 검사(임상병리사), 항암제 조제(약사)부터 수술 과정을 시간대별로 기록하고, 수술 수가를 입력(보건의료정보관리사)하는 업무까지 간호사가 도맡는 건 현재도 대학병원가에서 다반사다.

예컨대 항암제(주사제)를 만드는 약사가 퇴근한 이후 암 환자가 내원했을 때 간호사가 항암제를 조제하는 것이다. A씨는 "암 환자가 왔는데 항암제 조제 약사가 없다는 이유로 되돌려보낼 수 없는 노릇 아닌가"라며 "항암제는 환자의 몸무게·상태에 따라 종류·용량과 처방횟수 등을 다르게 해 항암제 전용 조제실에 간호사가 가서 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L-튜브(콧줄) 교환은 의사 고유의 몫이다. L-튜브는 식사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콧줄을 이용해 영양분을 위까지 공급해주는 방식의 기구다. 간호사들에 따르면 식사 시간에 L-튜브가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식사 시간과 겹쳐 담당의가 "식사 중이니 대신 껴달라"고 요청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한다. 대리 처방은 너무 흔하다는 게 A씨의 지적이다. 그는 "항암제 투여 전 기본적으로 환자의 몸을 씻어내는 약을 처방하는데 전공의가 부족한 탓에 전공의가 졸려서 그 약 처방을 깜빡하고 넣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경우 의사에게 확인해 대신 처방하기가 일쑤"라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는 17일 저녁, 각 병원에 면허증 반납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각 병원 간호국 등 간호사 관련 부서장이 간호협회로부터 받은 공문을 받고 결재 과정을 거치면 현직 간호사들에게 지침이 내려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이에 따라 간호사들이 면허증을 반납하는 시점은 다음 주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간호사 A씨도 "간호협회에서 면허증 반납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기꺼이 응할 것"이라며 "후배 간호사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면허증을 반납할 것이다. 면허증 반납 이후 어떤 일을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당분간은 휴식 기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간호협회는 18일, 간호사가 거부해야 할 의사 업무 목록을 전국 의료기관에 배포했다. 또 협회 내 불법진료신고센터를 설치해 현장 실사단을 별도로 운영·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이 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 업무지시에 대해 강력히 거부해 달라"며 회원들의 적극적인 준법투쟁 참여를 독려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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