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한국담당관 “연금과 재정에 북유럽식 ‘자동 브레이크’ 달아라”

홍준기 기자 2023. 5.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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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욘 파렐리우센 OECD 한국·스웨덴경제담당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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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복지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에는 노후 연금이나 정부 재정을 지키기 위한 ‘자동 브레이크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스웨덴 경제담당관을 맡고 있는 욘 파렐리우센(45) 선임이코노미스트는 WEEKLY BIZ와의 줌 인터뷰에서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 여건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자동으로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뒤로 미루고, 연금 혜택을 줄이는 장치를 만들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파렐리우센씨는 북유럽 경제를 꿰고 있으면서 한국 경제를 들여다보는 전문가다. 노르웨이 재무부 공무원 출신으로 2011년 OECD에 들어와 13년째 근무 중이다. 저출산·저성장 시대에도 재정을 건실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그는 북유럽식 ‘재정 브레이크’ 제도를 한국이 참고해볼 만하다고 권했다.

‘자동 브레이크’로 재정 지켜라

파렐리우센씨가 말한 북유럽의 ‘자동 브레이크’는 복지 지출이 갑자기 불어나 미래에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먼저 스웨덴·노르웨이가 운영하는 ‘연금 자동 조정 메커니즘(automatic adjustment mechanism)’은 평균 수명이 늘거나 경제 성장률이 떨어져 공적 연금의 안정성이 떨어질 때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거나 수령액을 줄이는 제도다. 파렐리우센씨는 “매번 연금 지급 기준을 개정하려 들면 반발과 진통을 겪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며 “재정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도록 ‘자동화된 시스템’을 만들어두면 진통 없이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부터 고령화에 대비한 연금 개혁을 추진해왔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빠른 편이었다. 평균 수명 증가에 따라 연금 수령 시점을 자동 조절하는 제도가 스웨덴식 연금 개혁의 핵심이었다. ‘자동 브레이크’에 따라 연금 수령을 위한 최저 연령이 올해 62세에서 63세로 늦춰졌다. 2026년부터는 64세 이상이 돼야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2026년 이후로도 자동으로 기대 수명 증가분의 3분의 2만큼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게 된다.

욘 파렐리우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스웨덴 경제담당관은 “고령화에 대응해 연금 재정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평균 연령이 늘어날 때 연금 수령 시기를 자동을 늦추는 제도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욘 파렐리우센 제공

파렐리우센씨는 “스웨덴에는 연금 기금의 자산이 부채(앞으로 지급해야 할 연금)보다 적다고 판단되면 지급되는 노후 연금 인상률을 낮추는 ‘균형 조정 메커니즘’도 있다”고 했다. 스웨덴뿐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까지 북유럽 4국이 모두 연금 체계 내에 수령 시기를 늦추거나, 연금 인상률을 조절하는 등의 자동 조정 체계를 갖추고 있다.

파렐리우센씨는 “한국도 심각한 고령화 추이를 고려할 때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국회도 관련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며 “2050년에는 한국 인구가 지금보다 20%가량 줄고 생산 가능 인구는 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재정개혁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인 ‘홈 케어’ 늘려 재정 아껴라

파렐리우센씨가 언급한 다른 하나의 ‘제동 장치’는 스웨덴이 채택하고 있는 ‘자동 재정 브레이크(automatic fiscal brake)’다. 실업급여 같은 근로가 가능한 연령대를 위한 복지 혜택을 매해 예산이 허락하는 만큼만 보수적으로 인상하는 제도를 말한다. 실업급여가 물가·임금 상승률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늘어나도록 제한을 걸어 정부 재정을 지켜낸다.

스웨덴은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에서 ‘프루걸 포(frugal four)’로 불린다. 정부 재정의 건전성을 중시하는 ‘구두쇠’ 국가들이라는 뜻이다. 스웨덴은 1990년대초 은행 연쇄 도산 위기를 겪고 자동 재정 브레이크를 도입해 실업급여, 주택급여 같은 복지 혜택의 인상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시작했다.

파렐리우센씨는 정부가 고령화 시대에 노인 복지 비용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아낸 방법으로 스웨덴의 애델 개혁을 소개했다. 애델 개혁은 노인들이 병원이나 요양 시설 대신 집에서 예방적 의료나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그는 “이러한 ‘홈 케어’ 복지는 비용 면에서도 상당히 효율적이고, 시설이 아닌 집에서 지낼 수 있어 노인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며 “이와 달리 한국은 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간병 인력을 늘려 집에서 돌봄 혜택을 제공해야 향후 늘어나는 노인 요양 비용을 적절한 수준으로 제어할 수 있고, 노인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 청와대에 방문해 촬영한 사진/욘 파렐리우센 제공

국민연금 기금 투자에 있어서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법을 참고할 만하다고 파렐리우센씨는 귀띔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는 재무부 소속 전문가들이 수익률을 극대화하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국부 펀드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이 투자하고 있어 좋은 수익률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연금의 투자 방향을 경제 부처가 주도하지 않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이민자에게 매력적인 나라 되라

파렐리우센씨는 “한국이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출산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은 합계출산율이 2021년 기준 1.67명으로 우리나라(0.81명)의 2배가 넘는다. 소폭이지만 한 해 전인 2020년(1.66명)에 비해 출산율이 상승하기도 했다.

파렐리우센씨는 “북유럽 국가에는 ‘여성은 반드시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하고, 남성은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력하게 자리 잡았다”며 “여전히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한국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했다.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동시에 포용적인 이민 정책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파렐리우센씨는 권고했다. 스웨덴은 이민자 규모가 노르웨이의 거의 2배일 정도로 북유럽에서도 이민에 개방적이다. 그는 “한국은 이민 문턱을 낮추고 이민자에게 매력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나중에 (능력 있는) 이민자들이 이주할 나라를 고르는 시대가 올 때 한국이 싱가포르나 일본, 여러 유럽 국가들과 (이민자 유치)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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