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든 빠르든, 목적지 이를 수 있어”…폭우 속 완주한 꼴찌의 묵직한 한마디
마침내 결승선에 다다르자 관중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이 선수는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캄보디아 국기를 들어 올렸다.
빈혈이 있는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던 갓 스무살 여성 육상선수의 작은 몸은 차갑게 식었고, 보폭은 점차 작아져 마지막에는 터벅터벅 걷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국 캄보디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국제대회 무대에서 중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난 8일(현지시간) 프놈펜에서 열린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 여자 육상 5000m 결승에서 골라인을 맨 마지막으로 통과한 캄보디아 보우 삼낭(20) 선수의 값진 레이스가 전 세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17일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보우는 프놈펜 외곽의 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육상을 시작했다. 신발 한 켤레로 콘크리트나 흙으로 된 바닥에서 훈련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의 달리기 실력은 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국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됐고, 5년이 지난 2021년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지난해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동남아시안게임 무대를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앓아온 적혈구 감소증이 결승 당일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빈혈 증상이 심각해지자 코칭스태프는 출전을 만류했다.
삼낭은 “트레이너가 건강 상태를 걱정해 달리기를 포기하자고 했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나는 경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몇 년 전 먼저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마음을 굳게 먹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삼낭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해 삼낭의 달리기는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몇분을 더 달려 마침내 완주했다. 1위를 차지한 베트남의 응우옌 티 오안보다 5분 54초 늦은 22분 54초의 기록이었다.
삼낭은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다소 실망하기는 했지만, 행복했다”며 “사람들은 내가 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격려를 보내줬다”고 말했다.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삼낭의 끈기에 감동해 미화 1만 달러의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삼낭은 포상금으로 어머니의 빚을 갚고 자신의 학비를 대고 싶다고 한다.
AFP는 “내란과 대량 학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캄보디아에서 동남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것은 매우 큰 일이었다”며 “보통이라면 주목받지 못할만한 장면이었겠지만, 삼낭은 이제 모두가 함께 셀카를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유명인이 됐다”고 말했다.
삼낭이 폭우 속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영상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확산하면서 뒤늦게 화제가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 공식 트위터에 지난 10일 올라온 영상은 현재 조회수가 70만에 육박한다. 리트윗도 1200회 이뤄졌다.
많은 누리꾼들은 ‘포기하지 않는 것의 가치’,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올림픽 측도 게시물에 ”아무도 삼낭의 완주를 막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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