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키신저 “美·中갈등, 5~10년내 3차대전 일으킬 수도”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내느냐에 달렸습니다. 5~10년 안에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 외교가의 ‘살아 있는 역사’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17일 공개된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100세 기념’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으로 인해 3차 세계대전이 5~10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대만 지역에서 커지고 있는 양안(兩岸)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고, 첨단 전쟁과 관련해 ‘AI(인공지능) 군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오는 27일 100세 생일을 맞는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인류를 파괴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 당장 평화를 위협하는 두 개의 최대 위험은 미국과 중국”이라며 미·중 갈등이 3차 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는 1차 대전 직전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며 “(힘의) 평형을 깨뜨리는 어떤 일이라도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양국 간 갈등에서) 정치적 양보를 할 여지가 크지 않다”고도 경고했다.
시급한 과제로 대만 관련 갈등 완화를 꼽았다. 그는 “(대만에서) 우크라이나식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만이 파괴되고 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질 것”이라며 “중국 또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의 자제 또한 당부했다. “미국은 병력 배치에 신중을 기하고 대만 독립을 지원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중 양국이 우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화를 통해 실무 관계와 신뢰를 점진적으로 쌓으라고 조언했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고령에도 첨단 기술이 사회에 가져올 변화와 위협에 대해 날카로운 의견을 냈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 등을 이유로 3차 세계대전을 막을 시한이 5~10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사 역사를 보면 지리의 한계, 정확성의 한계 등으로 적군을 완파할 능력이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이제는 (AI 때문에) 그런 한계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전쟁 등에서) 기술의 영향과 관련해 교류를 시작하고 군축을 위한 걸음마를 떼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양국이 ‘핵 군축’처럼 AI의 군사 능력에 대한 억지력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23년 독일 바이에른 미텔프랑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일 나치 박해를 피해 가족과 1938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1943년 미군에 입대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2차 대전 직후 하버드대 정치학과에 입학했고, 1954년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57년 쓴 ‘핵무기와 외교’라는 논문으로 이름을 알렸다. 논문에서 그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핵무기 위주의 대량 보복 전략의 한계를 비판, 미국 외교가는 물론 소련 군부에서도 주목을 끌었다.
‘세력 균형’이라는 현실주의 외교를 강조한 그는 1969년 닉슨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됐다. 같은 해 시작된 미국·소련의 전략무기제한 교섭, 1972년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베트남전쟁 종식을 위한 1973년 파리 평화 회담 등에 관여해 냉전 해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리 평화 회담을 공로로 협상 파트너인 레 둑 토 북베트남 정치국원과 함께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평화 회담이 실제 베트남 전쟁 종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키신저 전 장관의 수상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키신저는 “우리가 협상을 통해 실현하려 했던 평화가 무력에 의해 무너졌다”며 평화상 반납 의사를 노벨위원회에 전했다. 실제 철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핵 등 한국 관련 문제를 놓고는 다분히 강대국 중심적인 접근법을 내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2017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미국과 중국이 ‘북한 정권 붕괴와 주한미군 철수’를 맞바꾸는 과격한 ‘한반도 빅딜론’을 제안했다. 197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도쿄 납치 사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김 전 대통령 구명 조치에 나선 일화도 유명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100세에도 또렷한 정신과 만만찮은 체력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이코노미스트 인터뷰는 이틀간 8시간에 걸쳐 이뤄졌다고 한다. 1982년 외교 컨설팅사인 키신저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최근까지 왕성한 자문 활동과 저술 활동을 맡고 있는, 미국 역대 행정부 각료 가운데 최고령 생존자로 꼽힌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2021년 키신저 전 장관과 공저한 ‘AI의 시대’를 출간한 이후 한 팟캐스트에 나와 “그와 일해 보니 장수의 비결은 아무래도 워커홀릭(일중독)인 것 같더라”며 “그는 마흔 살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걸어다니고 가족과 저녁을 먹은 후 밤엔 일을 하더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 대부분을 현장에서 직접 관람할 정도로 광적인 축구 팬으로 유명하다. 국무부 장관 시절인 1975년 ‘축구 황제’ 펠레에게 직접 전보를 보내 북미축구리그(NASK) 코스모스로 펠레를 영입하는 데 앞장섰다. 백악관을 떠난 이후 미국의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를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을 수시로 접촉하고 외교를 축구에 비유하는 칼럼을 자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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