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운명] 50년 묵은 ‘내 집 마련’ 사다리… 전세의 역습은 어디서 시작됐나
집값 하락기 거치면서 전세가격은 그대로, 매매가격만 낮아져
“전세사기, 현 제도에서는 주기적으로 발생할 수도”
전세 제도는 집을 살 여유는 부족하지만 월세는 부담인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중간 사다리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연이은 ‘전세사기’로 전세 제도에 대한 회의론까지 등장하게 된 데에는 집값 하락기의 ‘갭(gap)투자’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셋방살이’서 시작한 전세… 2010년대부터 ‘깡통전세’ 시작
전세제도는 1960~1970년대 주택 부족 현상에서 시작했다. 방 한 칸을 세를 줬던 ‘셋방살이’가 원조격이다. 당시엔 은행 이자도 높아 내 집 마련을 위해 서민들이 목돈을 금융기관에서 빌리기가 쉽지 않았다. 도시의 서민들은 일단 월세에 살면서 저축으로 목돈을 만들고, 어느정도 목돈이 모이면 전세로 전환했다. 전세제도는 내 집 마련을 위해 거쳐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전세의 영문은 한국어 발음 그대로 ‘전세’(jeonse)다.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과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세입자의 이해가 맞아 생겨난 임대 형태로, 한국에만 있는 임대차 계약 방식이다. 급속한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됐던 우리나라에서만 자리잡은 방식이다.
이런 전세 제도의 역습이 시작된 것은 집값 하락기를 맞이하면서 부터다. 수십년간 ‘집값은 무조건 상승한다’는 믿음이 공고하게 자리 잡았지만,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 외부 충격을 거치면서 한국도 집값이 하락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특히 ‘깡통전세’는 2010년 이전에는 없었던 단어다. 아파트뿐 아니라 연립이나 빌라 등 다세대주택의 전세가격도 매매가의 70% 이하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전세가와 매매가가 상승했다. 이후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되면서 매매 대신 전세에 살고싶어 하는 수요는 점점 늘어났다. 전세가격은 오르고 갭은 줄어드는, 깡통전세의 시작인 셈이다.
2010년 전후로는 공급 부족에 대한 비판으로 인천 검단, 파주 교하 운정, 화성 동탄 등 2기 신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로 인해 매매 수요는 줄었지만 입주물량은 늘어나니 매매가가 크게 떨어졌다. 깡통전세가 횡횡했던 시절이었다.
◇전세 거품 커지면서 청년 주거안정 위협… “현행 제도에서는 위기 반복”
2013년에 도입된 전세보증보험 역시 전세가격 거품을 키웠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주택가격의 100%까지 전세보증금을 보호해주겠다고 하면서 임차인도 전세가가 매매가 차이가 적더라도 손실에 대한 우려를 덜게됐다. 일부 임대인들은 전세보증보험을 빌미로 임차인을 안심시키고 전세가격을 부풀렸다.
그러면서 전세가격보다 집값이 낮아지는 ‘역전세’가 등장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전세 낀 집을 수십채씩 투자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최근엔 이 전세가격마저 떨어지면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세사기는 이러한 사고를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셈이기도 하다. ‘빌라왕’, ‘건축왕’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특히 이런 전세사기는 청년층일수록, 아파트가 아닌 빌라나 연립일수록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청년층이나 신혼부부 등 사회초년생이 아파트를 내 집 마련하기 이전 빌라나 연립에 거주하는 형태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임차권설정등기를 신청한 2030 임차권자는 461건에서 2149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40대가 같은 기간 129건에서 593건으로, 50대는 98건에서 317건으로 늘어난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숫자다. 청년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라도 전세 제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현재 전세 제도 아래에서는 전세사기 사례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지금까지 봤을 때 깡통전세 위기가 오기 전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저금리”라며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다른 나라에 비해 금리를 높게 설정하기 어려워졌고, 다른 나라와 금리를 맞추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세사기는 현행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꾸준히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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