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60대 이후 40% 작아져…하지만 가장 젊은 장기

한겨레 2023. 5. 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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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늙음의 과학
나이 들면 실제 간 작아지지만 기능은 안 떨어져
간이 해독해야 할 술 섭취 줄이고 충분히 쉬어야
한 회사의 회식 자리. 이른바 ‘폭탄주’로 건배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창 온라인 회의를 하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번호를 보니 저장된 번호도 아니고,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지역번호로 걸려온 것이라 흔한 광고성 전화이겠거니 하며 회의에 집중했지요. 하지만 같은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 뭔가 미심쩍어 전화를 받으니, 휴대전화 너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여기 학교인데요. 너무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오늘 아이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놀다가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좀 다쳤는데, 많이 아파하네요.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순간, 간이 철렁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새끼가 다쳤다니, 다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급히 회의하던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아이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간을 졸이면서 학교 보건실에 들어섰습니다. 자기 엄마 간 떨어지게 해놓은 아이는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습니다. 실제로도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뼈는 상하지 않았고 팔근육이 좀 늘어났을 뿐이라, 몇 주간 반깁스와 팔걸이 붕대로 말끔히 나았으니까요. 제가 원체 간이 작은 사람이 아닌데 아이 셋을 키우며 종종 이렇게 간 떨어지는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이제는 간이 졸여지다 못해 콩알만 해진 듯합니다. 그런데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간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작아진답니다.

‘우리 몸의 화학공장’ 간에 대하여

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간이 어떤 장기인지 잠시 짚어보겠습니다. 간은 오른쪽 상복부에 자리한 장기로, ‘우리 몸의 화학공장’이라는 별칭처럼 각종 대사 작용을 하는 기관입니다. 먹는 행위를 기계적으로 풀어보면, 내 몸을 유지할 물질과 에너지의 재료를 얻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몸을 취하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 먹는 행위는 먹거리 속에 든 포도당을 쪼개 몸 전체를 가동할 에너지원인 아데노신삼인산(ATP)을 얻고, 단백질을 아미노산 단위로 쪼개고 다시 조립해 몸을 유지·보수하는 과정이죠.

식도에서 대장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이 음식물을 잘게 자르고 분해해 물질을 분자 단위로 만들어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면, 간은 이렇게 기본 단위로 쪼개진 물질을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로 합성·전환·분해·저장하는 역할을 하지요.

그래서 간은 간문맥이라는 독립된 혈관으로 소화기관과 직접 연결됐습니다. 간문맥은 길이 8㎝, 지름 0.8~1.2㎝인 꽤 굵직한 혈관인데, 간으로 들어오는 혈액의 75%가 간문맥을 통해 들어올 정도입니다.

이렇게 간문맥을 통해 소화기관에서 특급 배송된 물질 중 우리 몸의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구성하는 성분을 저장하고 합성하고 전환하는 일을 간이 도맡습니다.

간은 포도당을 받아 글리코겐 형태로 간에 저장해뒀다가 필요 시 방출해 혈당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합니다. 또한 간에도 아미노산이나 글리세롤 등의 물질을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기능이 있어, 글리코겐이 바닥나도 우리 몸은 혈당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지요.

간은 지방을 합성해 저장하거나 분해해 에너지를 추출하고, 지방 성분으로 구성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공급합니다. 몇 가지 주요 아미노산을 합성하고 이들을 조립해 단백질도 만드는 등 바삐 돌아갑니다.

간은 장기 중 재생력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 속 매일 간이 재생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누리집 갈무리

세포막 녹이는 물질을 좋아하는 인간

이렇게 필요한 물질만 합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에서 꼭 필요한 물질만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요. 때로 음식에 섞여 몸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오거나 이들을 대사시키는 과정에서 중간 산물로 유독물질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간은 이런 물질이 신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을 분해하거나 덜 해로운 물질로 전환하는 기능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알코올 분해입니다.

알코올은 지방을 녹이는 작용을 하기에 지방 성분으로 구성된 막을 가진 세포에 유해한 물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포막이 녹아버리면 세포는 원형을 유지하지 못해 죽어버리니까요. 손소독제에 알코올을 사용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서인지 알코올을 상당히 좋아해 부러 알코올을 몸속에 집어넣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알코올이 몸속에 들어오면 간은 바빠집니다. 알코올이 세포에 해를 미치기 전에 다른 물질로 전환해야 하니까요.

일단 간은 알코올이 들어오면 알코올 분해효소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로 1차 전환한 뒤, 다시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로 이를 아세트산으로 전환합니다. 아세트산은 생체 내 대사 회로에서 에너지 발생 과정에 쓰입니다. 당분이 없는 술이 칼로리 높은 물질이라는 건 알코올의 분해 산물인 아세트산이 열량원이 되기 때문이죠.

간의 기능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암모니아 제거입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이지만, 단백질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중간 산물로 본의 아니게 암모니아가 생깁니다. 암모니아는 강알칼리성으로 신체에 유해하기 때문에, 간은 서둘러 암모니아를 독성이 덜한 요소로 전환한 뒤 신장에 보내 몸 밖으로 배출하는 일을 수행합니다.

이렇게 간은 소화기관과 직접 연결됐고 알코올이나 암모니아 등의 물질을 분해·전환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왔기에, 일단 신체 내에 들어온 다양한 독성물질을 1차로 해독하는 일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을 ‘체내 독소 해독 기관’이라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간에 일부 독성물질 해독 기능이 있다는 거지, 간이 완벽하거나 무한하다는 것이 아니며, 이 과정에서 간이 손상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경우(단백질 섭취, 꼭 필요한 약물의 복용 등)가 아니라면 해독이 필요한 물질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간을 위한 일이 되겠지요. 이 밖에 간은 여러 종류의 호르몬과 비타민, 철분, 혈액 응고 인자, 면역 물질 등을 비축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그야말로 생체 유지 시스템의 총괄실무자입니다.

쪼아 먹혀도 다시 자란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이렇듯 할 일이 많은 간이기에 크기도 상당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체구가 달라 어느 정도 크기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길이 25㎝에 무게 1.2kg에 이르는 상당히 큰 장기입니다.

그런데 간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점차 줄어 노년기에 들어서면 젊은 시절에 비해 그 부피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까지 감소합니다. 간이 줄어드는 것은 노화에 따라 간으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65살이 넘으면, 40살 이하일 때보다 간으로 가는 혈류량이 35% 정도 줄어듭니다. 신체 기관의 기능은 대개 되먹임 고리에 따라 조절되므로, 혈류량이 줄어 공급량이 떨어지면 간의 크기를 이전만큼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간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과 별개로, 간의 기능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화로 간세포 수가 줄어도 남은 간세포의 기능이 여전히 일정 수준 유지되는 거죠.

간은 우리 몸에서 가장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기관입니다.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의 마틴 벡 교수와 공동연구진은 젊은 쥐(생후 6개월)와 늙은 쥐(생후 24개월)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양과 활성화 정도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쥐가 합성하는 1만 종 이상의 단백질을 비교분석했고, 그중 500여 건의 단백질이 젊은 쥐와 늙은 쥐에서 다른 양상을 보임을 알아냈지요. 젊은 쥐에게서 많이 합성되는 단백질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든 쥐에게서 더 많이 만들어지는 단백질도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단백질 발현 유형을 장기별로도 나눠 접근했는데, 간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간은 장기 중 가장 재생력이 강한 기관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설 속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매일 밤 독수리에게 쪼아 먹혀도 날만 밝으면 다시 자라날 정도였다는데, 현실 인간의 간 역시 전체의 3분의 1이 제거돼도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회복될 정도입니다. 이 재생력에 따라 간은 신체 기관 중 가장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하는 기관입니다.

연구진은 간의 단백질 발현 유형을 통해, 간은 노년기에 들어서도 젊은 쥐의 단백질 발현 유형을 거의 유지하며,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전체의 2% 정도에 불과함을 알아냅니다. 우리 몸의 장기는 각자 다른 속도로 늙어가는데, 그중에서도 간은 가장 느리게 늙어가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찾아냈죠.

간이 천천히 늙을 수 있도록

202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간질환이 8위였습니다. 간이 직접적 사망원인이 되는 때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입니다. 그러나 연령을 나눠 살펴보면 30~50대 중년의 경우 간질환이 사망원인 3~4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습니다.

간이 가장 천천히 나이 드는 기관임을 고려한다면 아직 본격적인 노화가 일어나기 전이므로, 간질환은 노화의 영향이라기보다 외부 환경이 요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명, 즉 천천히 늙어갈 권리를 충분히 누리도록 도와주세요. 간이 해독해야 할 술과 독성물질의 섭취를 줄이고, 간염 예방주사를 맞고, 간이 과로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음식을 먹고 휴식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간이 주어진 수명을 충분히 누리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늙음의 과학: 나이 들어가는 당신은 노화하고 있나요, 노쇠해지고 있나요.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의 나이 드는 것의 과학 이야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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