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 간 노동부 장관 100여 분간 “불법 노조” “법치” 얘기만

이 장관, ‘미래세대 위한 노동개혁’ 특강
강의 시간 대부분 논란 해명하는데 할애
주 69시간 우려엔 “극단적 사례로 왜곡”

17일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서울대 한 교양강의에서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이정식 장관의 서울대 방문 특강에 맞춰 책임 있는 업무수행을 요구한다.”

지난 17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강의실 문 바로 옆 벽에 대자보가 붙었다. 학부생 대상 서울대 교양강의에서 이날 특강을 진행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 장관은 “주 69시간제는 개악”이라는 비판이 담긴 대자보를 흘낏 본 뒤 강의실에 들어와 교단에 섰다. 수강생들에게 받은 미리 받은 질문지에는 ‘세대간 갈라치기’ ‘노동개혁에 대한 비판 여론’ 등을 묻는 질문이 담겼다.

이 장관은 이날 교양강의에서 ‘혁신과 변화의 시대,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개혁’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러나 강의 시간 100여분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둘러싼 논란과 비판을 해명하는 데 대부분 할애됐다. 강연과 질의응답에서 이 장관의 발언은 ‘기승전 법치’로 끝났다. ‘주 69시간제 논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법 내용을 제대로 모르면서 비판한다”고 했다.

이 장관은 ‘법치의 확립’을 내내 강조했다. 비판 대상은 노동조합이었다. 그는 “CEO의 처벌 수위를 높이면 잘한다고 하면서 노동조합이 회계법을 지키나 알아보면 탄압이라 그런다” “유독 노동조합만 ‘탄압하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특권 반칙을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윤 정부 노동개혁의 핵심”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시간 개편이 ‘주 69시간제’를 가능케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극단적 사례로 취지가 왜곡됐다’는 식으로 답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노동개혁안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눠봤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MZ(노조)를 몇 번 만났는데, 소수노조 교섭권 문제에 관심 있을 뿐 법 내용은 몰라서 한두시간 설명을 했다”고도 했다.

이 장관은 ‘최저임금이 안 지켜지는 현실’을 묻는 질문에는 “지킬 수 없는 법은 암시장을 만드니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주 52시간제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으니 법을 바꿔 근로시간을 늘려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장관은 “52시간 근로 넘으면 불법이어도 현장에선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한 사회복지학과 수강생은 “강연에서 노동단체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는 국정기조가 보였다”며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측면 있지 않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가 케이지에 들어갔던 것도 이벤트가 없으면 공론화가 되지 않아서였던 것처럼 사안의 여러 측면이 고려돼야 하지 않냐”고 했다. 이에 장관은 “좋은 말씀”이라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밥을 굶다가 가는 한이 있어도 내가 하는 거지 왜 남의 사업장에 가서 그러냐’고 주변에 말해왔다”고 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강의실 앞 ‘주 69시간 개악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모임’이 붙인 대자보.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노동자와의 대화와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지현 기자

이 장관은 ‘주 69시간 개악에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모임’이 붙인 대자보 앞을 다시 지나 강의실을 떠났다. 대자보는 주 69시간제 개편을 두고 “한국에서 2500명 넘는 노동자가 과로사로 죽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4.2%에 불과한 한국에서 (주69시간제가 시행되면) 직장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무법지대로 변할 것”이라고 했다. “장관이 입맛에 맞는 노동자만 만나고 있다”며 “장관은 ‘하청노동자’ ‘화물노동자’ ‘저임금노동자’ ‘건설노동자’ 등을 만나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대자보를 붙인 학생 중 한 명인 학부생 이모씨(24)는 18일 통화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갈라치기하거나 불온시하는 정부의 모습에 학생사회에서도 문제의식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자보를 작성했다”고 했다. 이 장관은 대자보 내용을 수업에서 잠깐 언급하기도 했다.

“오늘 강의한다니까 대자보가 붙었는데 주69시간 빨리 없애라고 하고…(과거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최저임금 인상하라!’ 하면서도 최저임금 얼마인지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