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신희동 KETI원장 “외부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지속 성장하는 연구원 목표”
“외부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지속 성장하는 연구원”
신희동 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이 그리는 KETI의 발전상이자 미래상이다. KETI는 1991년 설립돼 국내 중소·중견 기업의 기술 혁신과 신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국내 대표 전문 생산 기술 연구기관이다. 정부 지원 예산 없이 자생적으로 과제를 수주하거나 기술 이전, 사업화 등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신희동 원장은 지난해 7월 KETI 제10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28년간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 생활을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과 산업 트렌드를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예리했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영향으로 기업과 산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남달랐다.
신 원장은 시시각각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KETI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중장기로 KETI가 견실하게 성장할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취임 300일을 지나 1년을 앞두고 있는 신 원장에게 KETI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대담=윤건일 소재부품부 부장
-5월 13일, KETI 원장 취임 300일을 맞았다. 소회가 궁금하다.
▲ 인터뷰를 계기로 날짜를 새삼 알게 됐다. ‘300’이라는 숫자가 크게 다가온다. 3년 임기 중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인터뷰를 준비하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가에 대한 반성하는 계기도 된 것 같다.
KETI 직원을 포함해 국내 전자 정보기술(IT) 산업 관계자 목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공직을 벗어나 실제 현장에서 첨단 기술을 체험했다. 여러 국내 중소기업 애로사항을 들어보니 기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실감했다. 가시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대전환되는 현실에서 연구원의 성장성을 지속할 수 있는 견고한 경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지속 가능한 연구원’이란 건 무엇인가.
▲KETI는 지난 30년간 눈에 띄는 외적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 기준으로 사업 규모가 3000억원을 돌파했다. 국내 생산기술 연구소 중 유일하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지원 체계 평가에서 S등급을 획득했다. 이런 KETI의 외적 성장에 걸맞은 내실 있는 조직 운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규모 있는 과제를 수주해서 사업 규모만 키우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KETI의 현 역량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역량인지 혹은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반사이익인지 늘 고민한다. KETI 핵심 자산인 연구원들이 외부 환경 변화를 스폰지처럼 잘 받아들일 역량이 있는지, 혹여나 외부 환경이 흔들렸을 때 연구원도 흔들리는 ‘천수답’ 같은 구조는 아닌 지를 봐야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견실하게 성장하고 국가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지속 성장이 가능한 KETI를 만들기 위해 취임 후 변화를 준 것은.
▲ 지속 가능한 성장 토대를 만드는 건 단순하게 조직 개편과 인사 조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보통 기관장들이 취임하자마자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속도를 내기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내부 문화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화는 리더의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조직원 스스로 바꿔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조직원 의견을 듣고 소통하면서 지속가능한 연구원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속도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뤄낼 때,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1년간 체력 훈련을 시킨 사례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내실과 기본기를 다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연구원 역량을 강화할 토대를 충실하게 만들어내면 어떤 외부환경 변화와 상황이 닥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추진하는 지속가능한 연구원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내 임기 내 나오지 않아도 좋다. 내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KETI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전략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KETI는 ETRI 등 다른 산하 연구기관 종종 비교되곤 한다.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 KETI는 정부 지원금이 없다는 점이 큰 차이다. 일례로 ETRI는 정부 지원 등 안정적인 투자 기반으로 장기적인 연구개발(R&D)을 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TRI는 통신 기술에 강점을 가진 것도 특징이다. KETI는 매우 다양한 산업의 기술을 애자일(agile)하게 개발, 사업화를 할 수 있는 특장점이 있다. 외부 변화에 따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다루고 있어 한편으로 KETI만의 ‘시그니처’ 기술을 만들어봤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핵심 기술에 대한 성공적인 사업화도 늘 중요한 화두이자 KETI의 숙제인 것 같다.
▲ KETI의 연구개발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은 정평이 나 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차세대전지, 홀로그램 등 국내 전자산업의 핵심 기술을 집중 육성해온 덕분이다. 대표적으로 작년 KETI가 개발한 세계 최고 수준 질화갈륨 기반 전력 증폭 기술은 국가 R&D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KETI의 우수한 기술 역량을 어떻게 기업으로 이전해 사업화로 성공시킬지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거리다. 처음 KETI 원장으로 와서 가졌던 가장 큰 고민도 ‘연구원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단순히 정부 과제를 잘 수주해 외형성장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었다.
성공적인 사업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괴리감’과 ‘빈틈’이 존재한다. 수많은 기업을 만나 KETI 기술을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연구원이 개발한 기술’ 간 격차가 있다. 이 격차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한 KETI가 되기 위해서도 우리가 만드는 기술이 연구만을 위한 기술인지 사업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인지 또 무엇이 중요한지는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원하는 기술과 KETI 기술 간 괴리를 줄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 외부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전문적인 벤처투자사(VC), 엑셀러레이터, 발명진흥원, 특허청 등 협업할 수 있는 많은 곳이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협업 파트너를 찾고 있다. 전문가 도움을 받아 기술 사업화를 ‘괴리’를 줄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기서 ‘괴리’란 우리가 만든 기술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업 간 차이를 말한다. 성급하게 우리가 만든 기술을 어떻게든 기업과 연계하려고 하기보다는 이 과정을 대신해줄 외부 전문가와 손잡고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추진해 보려 한다. 오랜 기간 KETI가 개발해 온 과거 기술을 다시 응용해 현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형식적인 것보다 연구원의 진짜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사업화를 확대하려고 한다.
-최근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맞춰 KETI는 워싱턴에서 미국 배터리산업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ETI에는 차세대 연구센터가 있을 만큼 배터리 연구에 강점이 있다. 향후 미국과 시너지와 KETI의 역할은.
▲ 우리나라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터리 분야 엄청난 강점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한국 배터리 산업에 관심이 높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가진 미국이 한국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 협력은 미국 의지가 더 강했던 것 같다. 업무 협약을 계기로 한미 양국 간 배터리 산업 전반의 R&D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산업 기술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미국 동맹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양국 정부 주도로 호혜적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한다.
KETI는 앞으로 미국 배터리산업협회가 보유한 현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차세대 배터리 분야 R&D 협력 수요를 발굴할 방침이다. KETI는 2011년부터 차세대 전지의 소재, 전극, 제조를 아우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현지 수요 기업을 연결해 중소 벤처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모빌리티 전동화 패러다임에 지속 대응할 수 있도록 KETI만의 배터리 연구 역량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배터리를 비롯해 전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 KETI는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수많은 돌발 변수로 구성된 ‘고차 방정식’이다. 이를 풀기 위해선 민-관의 다양한 주체가 각자 역량을 바탕으로 ‘원팀’을 이뤄 대응해야 한다. 기술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점에서 KETI를 포함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KETI는 단기간 처방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산업이 중장기에 걸친 확고한 공급망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이후 ‘소부장 국산화’가 화두였다. 최근 한일 관계에 변화가 일며 국산화 동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 당시 기초 체력이 없으면 공급망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기술 국산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를 비롯해 모든 전문가가 여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구기관 입장에선 원천 기술에서 상용화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향후 발생할 공급망 위기에도 유연히 대처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강조하고 싶다. 당장 한일 간 훈훈해진 분위기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술 수준 고도화, 양산성 확보 등 한국은 중장기적 기술 축적을 이어가야 한다.
더 나아가 국내 기술 방향이 ‘추격’을 탈피해 ‘선도’와 ‘초격차’를 지향해야 한다. 네덜란드 ASML처럼 우리나라가 글로벌 공급망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가진 ‘슈퍼 을’로 성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원장으로서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 KETI가 올해 창립 32주년을 맞는다. 남은 임기 동안 KETI가 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전자 IT산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기업지원, 인재 육성을 아우르는 내부 시스템을 지속 확충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산업 대전환 시대에 걸맞은 연구시스템 △기업의 성장과 함께하는 협력형 기업지원 시스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연구환경 시스템 △구성원 스스로 성장하는 인재 경영시스템이라는 4대 중점 경영 과제 달성에 내실을 다지고 싶다.
아프리카 속담 중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KETI는 산학연관 대표적 협력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다해 단기적인 개발 성과보다 지속 가능한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구원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겠다.
◇신희동 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를 통해 통상산업부에서 공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에서 지역투자 과장, 광물자원 과장, 신재생에너지 과장을 거쳐 2009년 대통령 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미국 휴스턴총영사관 경제영사로 근무 후 2014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관리과 과장, 지역산업과 과장, 기획재정담당관, 원전산업정책관, 대변인,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22년 7월부터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원장에 취임했다. IT분야 기술 개발을 위해 도전적으로 과제에 참여하고 자국 중심 공급망에 대응하는 전략적인 R&D 국제협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정리=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 사진=김민수 기자 ms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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