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교육 현장에서 모색하는 ‘첨단과학과 복지의 동행’
“과학기술, 사회적 약자의 삶도 풍요롭게 해야” 화두 던져
[서울&] [커버스토리] 음악활동 참관하고 전자칠판 등 기기 활용 자세히 살펴
센터 개관식 뒤 3개월 만에 다시 찾아
“거점경로당에 첨단기기 활용 등 검토”
‘약자와의 동행’ 미래 버전 될 것 ‘기대’
‘첨단과학과 복지의 동행.’
지난 10일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당산동에 있는 ‘어울림센터’를 방문해 센터를 구석구석 살피면서 내건 화두다. 지난 2월24일 문을 연 영등포구 어울림센터는 연면적 3058.79㎡, 지하 3층~지상 7층 규모로 장애인가족지원센터(4층, 센터장 정순경)와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5~7층, 센터장 박미진)가 함께 입주해 있다. 지상 1~3층에는 과학 특화 도서관인 영등포생각공장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최 구청장도 당시 개관식에 참석해 시설을 둘러본 뒤 “발달장애인이 안전하게 사회에 정착하고 돌봄 가족의 마음도 살필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이하 평교)의 시설과 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위해 약 3개월 만에 다시 어울림센터를 찾은 것이다. 특히 이번 방문은 평교에 갖춰져 있는 전자칠판이나 전자식 인지교육 프로그램의 기능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영등포구의 경로당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가늠해보기 위해 이루어졌다.
영등포 평교가 첨단 시설을 갖춘 것은, 평교가 입주한 어울림센터가 종합부동산기업인 ‘에스케이디앤디’(SK D&D)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곳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SK디앤디는 자사의 지식산업센터 브랜드인 ‘생각공장’을 당산동에 공급하면서, 어울림센터 건물뿐 아니라 인테리어비 등을 추가 부담하는 협약을 했다. 구에서는 서울시의 특별교부금으로 전자칠판과 인지교육 프로그램 등을 구입했다. 박미진 평교 센터장은 “영등포구 평교에서는 이 밖에도 의사소통 도구를 비롯해 태블릿피시나 컴퓨터 등 다양한 첨단기기를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구청장은 이런 첨단시설들이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약자가 인간적인 삶을 누리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는 최 구청장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최 구청장은 2012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획관리관을 역임했고, 2017~2021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연구단장을 맡은 ‘과학통’이다. 특히 국립과천과학관 전시연구단장 재임시 대학로에 위치한 국립어린이과학관 개관(2017년 12월)을 이끌기도 했다. 이에 따라 최 구청장은 이날 ‘행정가의 눈’과 ‘과학자의 눈’으로 영등포구 평교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장애인과 캐스터네츠 ‘합주’
“환영합니다.”
오전 11시 최 구청장이 첫 번째 참관 장소인 어울림센터 4층 음악활동 교실에 들어서자 교실이 활기를 띠었다. 차미진 음악선생님의 환영 인사와 함께 건반 반주가 이어지자 발달장애인 7명이 캐스터네츠로 신나게 합주하면서 최 구청장을 반겼다.
최 구청장이 빈자리에 앉자 발달장애인 안유정씨가 최 구청장에게 발달장애인용으로 세팅된 캐스터네츠 사용법을 설명했다. 최 구청장은 안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캐스터네츠로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활동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이 신나게 즐기는 동안 인지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구성됐다. 가령 ‘원원원 스톱’은 음악교사가 ‘원-원-원’ 하고 외칠 때 발달장애인들이 캐스터네츠를 세 번 치고, ‘스톱’ 하고 외칠 때 멈추는 게임식 음악프로그램이다. 최 구청장도 발달장애인들과 미소를 주고받으며 ‘원원원 스톱’을 함께 했다.
영등포구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학령기를 지난 성인 발달장애인은 누구나 식비를 포함해 월 30만원의 저렴한 이용료를 내고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영등포구 평교는 모두 6개 반을 운영한다. 각 반은 발달장애인 6명과 교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12월 어울림센터로 이전하기 전에는 5개 반을 운영했는데, 센터 이전과 함께 1개 반을 늘렸다. 평교 규모가 기존의 612.16㎡에서 어울림센터로 오면서 707.02㎡로 늘어났고, 이에 발맞춰 영등포구가 발달장애인 교육 예산을 늘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정원도 30명에서 36명으로 늘어났다.
영등포구에는 발달장애인이 총 1140명이 거주하는데, 이제는 교육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기 기간 없이 교육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평교에 등록해 수업을 받는 발달장애인은 모두 27명이다.
장소가 커지면서 가지게 된 또 다른 이점 중 하나는 평교와 장애인가족지원센터가 한 공간에서 좀더 안정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등포구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정순경 센터장은 “두 센터가 한 공간에 위치하면 발달장애인을 아침에 평교에 데려다준 부모가 가족지원센터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상담을 받는 등 이점이 많다”며 “하지만 현재 서울시 전체 자치구 중 5~6곳만 평교와 지원센터가 한 공간에 있다”고 설명했다. 영등포구는 어울림센터로 옮기기 전부터 평교와 지원센터가 한 건물에 있었지만, 새로 이전한 넓은 공간에서 장애인가족긴급쉼터나 상담실 운영을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여건이 개선됐다.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선정
어울림센터 개관으로 영등포구의 발달장애인 교육이 좀더 풍요로워졌지만 사실 센터 바깥에서도 영등포구가 발달장애인 교육에 큰 힘을 쏟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학령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꿈더하기학교’와 ‘꿈더하기지원센터’가 대표적이다. 신길동에 있는 두 시설은 각각 학령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중학교·고등학교 과정 학력 인정 대안학교’와 ‘방과후 돌봄센터’다. 기초지자체가 이런 기관을 설치한 곳은 영등포구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발달장애인 교육에 대한 영등포구의 이런 관심은 지난 4월17일 서울시 지자체 중 세 번째로 ‘장애인 평생학습도시’에 선정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교육부 산하 국립특수교육원이 주관한 ‘2023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공모 사업에 선정돼 국고 보조금 8300만원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 평생학습도시’에 선정되면,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양질의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장애인과 그 가족의 역량 강화를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영등포구는 ‘장애인 평생학습도시’ 선정에 맞춰 평교와 가족지원센터, 꿈더하기학교 등 5개 기관이 참여하는 총 26개 프로그램을 오는 6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영등포구의 장애인 교육은 더욱 내실있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청장과 함께 댄스를…
발달장애인과의 합주를 마친 최 구청장은 합주에 참여한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발달장애인들도 캐스터네츠 합주로 최 구청장을 환송했다. 그 가운데 특히 중증뇌병변장애인 조혜원씨는 최 구청장을 위해 ‘나비야’를 불렀다. 템포는 아주 느렸지만, 한 음 한 음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이었다. 최 구청장은 조혜원씨에게 “지난 2월 개관식 때 전자칠판에서 나오는 댄스 율동을 따라 하며 너무도 즐거워하던 조혜원씨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며 “앞으로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과 인사를 나눈 최 구청장은 조혜원씨가 즐거워하며 교육에 참여했던 전자칠판 프로그램을 살펴보기 위해 6층으로 향했다. 박미진 평교 센터장이 최 구청장에게 “발달장애인들이 너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며 보유한 다양한 프로그램 중 댄스 프로그램을 전차칠판에 띄웠다. 최 구청장과 박 센터장이 화면의 움직임을 따라 몸을 움직여본다. 발달장애인이 흥미를 갖는 요소와 댄스의 난이도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점검을 마친 최 구청장은 “발달장애인이 좀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난이도의 프로그램을 갖추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최 구청장은 이어 7층의 심리안정실을 찾았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독일에서 도입한 최신 시스템이다. 최 구청장은 그 가운데 발달장애인을 위한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시연해봤다. 스틱과 버튼을 이용해서 개구리가 이동하면서 날벌레를 잡는 프로그램이었다. 박미진 평교 센터장은 “발달장애인 인지치료용 프로그램은 사실 어르신의 인지치료와 원리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며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시니어의 인지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교 전체를 둘러본 최 구청장은 “과학기술발달은 시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며 “사회적 약자에게도 이런 풍요로움의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구청장은 “첨단과학기기를 장애인 교육에 더욱 잘 활용하는 한편 어르신 복지와 교육 등 다른 곳에서도 활용도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 구청장은 “우선 영등포구 전체 170곳에 이르는 경로당 중 거점경로당을 선정해 첨단과학기기를 교육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 구청장이 추진하는 ‘첨단과학과 복지의 동행’이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을 미래지향적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가길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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