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문건 은폐' 기우진 전 기무사 5처장 항소심서 유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계엄령 검토 사실을 숨기려고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는 기우진 전 국군기무사령부 5처장에게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1심 군사법원에선 무죄가 선고됐는데 판결이 뒤집힌 겁니다.

재판부는 기 전 처장이 당시 기무사령관, 즉 지난 3월 귀국한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걸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3부는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기 전 처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기무사 지휘부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던 2017년 2월 '계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했습니다.

이 문건엔 탄핵 심판이 기각됐을 때 이에 분노한 촛불 시위대가 청와대, 정부 청사 등을 점거하는 등 '소요'가 일어나면 위수령, 계엄령을 발동한다는 군의 시나리오가 담겼습니다.

기 전 처장은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실제 TF 업무와 무관한 '방첩 수사 연구 계획' 내용을 담은 허위 공문서를 작성해 인력 파견·예산(특근매식비)을 신청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계엄령 검토 문건을 '훈련 비밀'로 등재하기 위해 문건 제목 일부를 '훈련에 관련된 것'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았습니다.

1심 재판을 했던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계엄 문건 은폐 시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지난 2019년 12월 무죄를 선고했지만 오늘 2심 재판부는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부분이 유죄라며 1심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기간과 참가자, 장소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한 지침을 주고 (연구 계획) 문서를 작성해 담당 공무원에게 발송하게 했다"며 고의성을 인정했습니다.

기 전 처장 등이 TF를 운용할 당시 인가되지 않은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사용하고 최종 작업 후 노트북을 포맷한 점 등을 근거로 기무사의 계엄 검토에 대한 위법성도 인식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다만 공전자기록 등 위작교사 혐의는 "법리적으로 교사범이 성립하려면 정범의 범죄 행위가 인정돼야 하는데, (정범이) 피고인의 지시를 받고 공문서전자기록을 위작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소강원 전 기무사 부대장도 무죄였다가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 항소심에서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았고,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전 모 중령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 원의 선고유예가 확정됐습니다.

오늘 재판부는 "계엄의 전반적 사항을 검토하는 것은 기무사 직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기 전 처장은 당시 기무사령관의 계엄령 검토 지시에 따라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엄령 검토 문건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되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2017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해 기소중지됐다가 지난 3월 귀국해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조 전 사령관에게 2016년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와 관련해 부하들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기무사 요원들을 동원해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회를 연 혐의 등으로 지난달 14일 구속기소했고 조 전사령관의 핵심 혐의인 계엄령 검토 문건 의혹을 계속 수사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

박하정 기자parkhj@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