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통역’ 소문나 경기도서도 찾아와

서울앤 2023. 5. 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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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동 주민센터 ‘외국인 통역’ 운영

[서울&] [자치소식]

구로구 구로2동 주민센터에서 중국어 통역을 맡은 김상화씨(왼쪽 둘째)가 11일 민원 서류를 발급받으러 온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외국인 4만4천 명 중 97%가 중국인

구로2동·구로4동·가리봉동 1명씩

통역 업무 외 행정업무도 함께 보조

“연말께 다른 동으로 확대 여부 결정”

“어떻게 오셨어요. 체류지를 변경하실 건가요.”

김상화(54)씨가 구로2동 주민센터에 온 주민에게 묻자 민원을 보러 온 주민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체류지’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머무는 장소를 가리킨다.

김씨는 지난 3월부터 구로구 구로2동 주민센터에서 일한다. 동 주민센터를 방문한 중국인에게 민원 관련 통역과 안내를 맡아 한다. 방문이 어려운 중국인 주민은 전화로 민원 상담도 한다.

“재밌고 보람 있어요.” 11일 구로2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김씨는 “중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구로구가 서울 자치구 중 처음 동 주민센터에 외국어 통역자를 뒀다. 동 주민센터를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언어 소통을 잘 못해 겪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구는 3월 외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구로2동, 구로4동, 가리봉동 등 세 곳에 외국인 통역자를 동 주민센터마다 한 명씩 배치했다. 모두 한국어와 중국어가 능통하고 행정 경험이 있는 주민 중에서 선발했다. 중국어 통역자는 1일 4시간 일하는데, 구로2동과 구로4동은 오전 9시부터 낮 1시까지, 가리봉동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한다.

구로구에 사는 외국인은 전체 구민 44만 2056명 중 10.57%인 4만6725명으로, 이 중 97%가 중국인이다. 특히 가리봉동, 구로2동, 구로4동 등 3개 동에 사는 주민 8만1284명 중 중국인은 2만9841명이나 된다. 3개동 전체 인구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6.71%다. 상당수가 조선족 동포이지만, 한족인 중국인도 적지 않다.

“안산시만 해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쪽 외국인도 많은데, 구로구는 특수하게 외국인 대다수가 중국인이죠.” 이진경 구로구 자치행정과 동행정팀장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 모여 살면 특정 외국어를 사용하는 통역자만 배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구로구는 중국인이 97%나 돼 중국어 통역자 한 명만 둬도 동 주민센터를 이용하는 외국인의 언어 소통 불편을 거의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크다”고 했다.

“체류지 변경신고, 출입국사실증명, 외국인사실증명 등에 대한 문의가 많아요.” 정은현 구로2동 민원행정팀 주무관은 “외국인은 한국에 오래 살아도 가끔 접하는 행정 용어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통역을 요청하면 김씨가 통역해주고 옆에서 잘 도와준다”고 했다. 요즘에는 중국인이 문의해오면 “오전에 동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좀더 편리하게 통역과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구로2동에는 중국어 통역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미 소문이 났어요.” 정 주무관은 얼마 전 경기도 파주에 사는 중국인이 구로2동에서 인감 등록을 한 일화를 소개했다. 정 주무관은 “파주에서 인감 등록을 하려던 중국인이 언어 장벽으로 인감 등록을 하지 못하고, 대신 구로2동에 가보라는 얘기를 듣고 구로2동에서 인감 등록을 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김상화씨(오른쪽)가 민원인의 신청 서류를 대신 작성하고 있다.

구로2동 주민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옆이 김상화씨 자리다. 김씨는 외국인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통역과 민원안내’라고 중국어로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일한다.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않는 김씨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 하면 “무슨 일로 오셨냐”며 말을 건넸다. 김씨는 통역, 안내뿐만 아니라 서류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주기도 한다. 김씨는 “중국분이 여기서 일한다며 무척 반가워한다”며 “일이 끝나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주민 한 명이 동 주민센터에 들어오자, 김씨가 다가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바로 옆에 있는 무인발급기로 안내했다. “웬만한 민원서류는 무인발급기에서 처리하도록 해요. 그러면 창구 직원도 조금 수월하죠.” 김씨는 “여기서 하면 싸고 빠르다”며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사용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준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는 외국인이 은행에서 통장을 만드는 게 까다롭지 않았지만, 올해부터 까다로워졌다. 김씨는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려고 출입국사실증명이나 거소지사실증명 등을 떼러 많이 온다”며 “지난해까지는 없었던 게 갑자기 생겨 불편을 호소하는 외국인이 많다”고 했다.

“말은 능숙하지만 읽고 쓰는 게 능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신청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영어로 해야 하니 힘들어하죠.” 김씨는 “체류지 변경신고 등을 하려면 통합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신청인 서명을 영어로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김씨도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다른 내용은 대신 작성해줄 수 있지만, 서명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냥 그림 그리듯이 그리면 쉽다고 알려준다”고 했다.

김씨는 통역 업무를 하면서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인 민원 안내업무도 한다. 정은현 주무관은 “김씨는 동주민센터를 찾는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챙기고 솔선수범해 일한다”며 “중국인 주민뿐만 아니라 내국인과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칭찬했다.

구로구가 동 주민센터에 외국인 통역자를 둔 것은 민선 8기 핵심 가치인 ‘따뜻한 동행’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구로구는 외국인 주민이 늘어나면서 행정 수요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연말에 중국어 통역자 시범 운영 결과를 보고 앞으로 운영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진경 동행정팀장은 “현재 3개 동에서 하는 통역 서비스를 다른 동으로 확대할지, 아니면 현재 3개 동에서 시간을 늘려갈지 결정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계속 중국인 주민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고 편리하게 행정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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