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 바꾼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꿔 달고 산하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18일 내놨다. 지난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돼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위상이 크게 추락한 전경련이 7년 만에 부활 시동을 거는 것이다. 전경련은 특히 지난 정권 아래서 해외 국빈 만찬은 물론 각종 행사 때마다 초청 대상에서 제외되는 ‘패싱’이 이어졌고, 그 여파로 신임 회장단 구성에 애를 먹기도 했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이날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정부 관계에 방점을 두고 회장·사무국 중심으로 운영됐던 과거의 역할과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정치 권력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하고 혁신을 주도해 경제에 기여하는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전경련 위상 회복의 핵심인 ‘4대 그룹’의 재가입과 기업인 회장 추대는 이날 성사되지 않았다. 전경련은 이날 혁신안을 통해 4대 그룹을 설득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싱크탱크 기능 강화하며 경제단체 역할도 지속
전경련은 먼저 55년 만에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1961년 설립 당시 사용했던 ‘한국경제인협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경련은 “당시 초대 설립인 13명이 ‘기업인’이라는 말 대신 ‘경제인’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경제(經濟)’가 나라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줄인말이었기 때문”이라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어 한경연을 통합해 연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순실 사태 이전 박사급만 23명에 달했던 한경연은 현재 박사급 6명 조직으로 축소됐다. 앞으로 연구 기능을 일원화하는 한편, 이슈별로 세계 각국의 전문가·실무자들을 접촉해 연구를 아웃소싱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IRA(인플레감축법)나 반도체법 같은 이슈에서 내용과 동향을 빠르게 파악해 대응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연구기관 역할뿐 아니라 경제단체로서 역할도 지속한다고 밝혔다. 해외 경제계와의 교류, 시민 사회와의 소통, 정부와 기업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병준 대행은 “미 헤리티지 재단이나 브루킹스 연구소처럼 순수 연구기관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가 아직 단단히 뿌리 내리지 못한 현실에서 경제단체의 ‘참여 활동’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원사들에 부담을 주는 사업은 외부 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전경련이 나섰던 ‘미르·K스포츠재단’ 사업 등은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회원사들이 참여하는 ‘IRA포럼, 건설위원회, 관광·엔터위원회’ 같은 이슈·업종별 ‘위원회’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현재 11사(그룹)인 회장단도 확대하기로 했다. 테크·포털 등 새로운 산업, 젊은 세대 기업인을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김병준 대행은 “전경련이 열심히 해서 자연스럽게 가입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그룹 재가입, 회장 추대는 남은 과제
4대 그룹의 재가입과 신임 회장 추대는 남은 과제다.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위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올 들어 대통령 방일·방미 당시 한일, 한미 재계회의를 주도하며 전경련이 갖고 있던 해외 네트워크 힘이 발휘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김병준 대행은 “4대 그룹과 혁신안에 대해 소통하긴 했지만 자세히 말하진 않았다”며 “상품이 좋으면 팔릴 것이고, 나쁘면 안 팔리지 않겠느냐.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말~2017년 초 잇따라 탈퇴 선언을 한 뒤 거리 두기를 했던 4대 그룹이 전경련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다. 최근 대통령의 미국과 일본 방문 시 경제 사절단으로 참여한 4대 그룹 총수들은 함께 간 김병준 대행과 수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고, 이 자리에서 김 대행은 전경련 혁신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5일 전경련이 처음 진행하는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행사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호 인사로 참여하기로 하면서, 4대 그룹과 전경련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복원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4대 그룹은 전경련 혁신안의 내용과 진정성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일단 혁신을 하겠다는 의지와 진정성은 보이는 것 같다”며 “향후 실천하는 모습을 더 지켜본 뒤 재가입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쇄신안에 쇄신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2018년 혁신안과 다른점을 모르겠다”며 “신선한 내용이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한국경제인협회’로 재출발하면서 기업인 회장을 추대하는 것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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