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심혈관질환 물질 가리려고?...‘진로 소주’ 성분명에 꼼수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식당이나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하이트진로 ‘진로 제로슈거’의 식품표시사항 라벨 위에 ‘제로 슈거’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 1월 이 제품이 처음 출시할 때만 해도 이 문구가 없었으나 최근 소비자가 접할 수 있는 진로엔 모두 적혀 있다. 경쟁사인 롯데칠성음료의 히트상품인 ‘새로’가 출시 7개월 만에 1억병 넘게 팔리며 흥행하자 후발주자인 자사제품의 마케팅전략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소비자가 제로 슈거임을 더 잘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문구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제로 슈거’ 문구는 가로 5.5cm, 세로 3cm 사이즈(바코드·주의 문구 제외)의 정보 표시란 중에서 가로 4cm, 세로 1cm가량을 차지한다. 표시사항 바탕색인 하얀색과 뚜렷이 구분되는 푸른색 글자가 원재료 일부와 식품 유형, ‘알코올’ 글자 등과 겹쳐 한 눈에 정보를 읽을 수 없게 방해한다. 가려진 원재료명 중에는 최근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을 통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 에리스리톨이 포함돼 있다.
김수연 한국소비자연맹 팀장은 “식품 표시 사항은 소비자가 정보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인데, 이를 가리는 건 식품 표시 제도 본질을 훼손한 것”이라며 “특히 원재료와 함량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 소비자가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도 “‘제로 슈거’ 표시가 제품 정보를 가리고 있어 소비자 결정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주류업체가 식품 표시 사항란에 홍보 문구를 넣은 것은 이례적이다. 식품 표시 제도 취지가 소비자 알 권리 보장인 만큼 이 구역은 ‘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 식약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글씨 크기와 글자 간격, 색깔 등까지 까다롭게 관리한다. 한 수입주류 제품의 경우 라벨에 ‘750ml’라고 표시했다가 식약처가 숫자와 단위 사이에 띄어쓰기가 없다는 이유로 수입이 거부된 전례도 있을 정도로 엄격하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식약처는 최근 주류 제품에 칼로리를 표기하거나 식품 정보를 QR코드로 확인할 수 있게 제도를 추진하는 등 소비자 알 권리 확대를 위해 애쓰는 중”이라며 “하이트진로 마케팅 방식은 식약처가 추진하는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가 국내 제조 식품의 경우 표시 사항을 가려도 문제 삼을 수 없는 규제의 허점을 노리고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식품 표시란을 활용한 ‘문구 마케팅’을 제재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 국내 제조사 식품 표시는 바탕색상, 글씨 크기 등 세부 규정만 있고 본질적으로 표시사항을 가리는 문구를 막을 근거가 없다. ‘원래의 용기ㆍ포장에 표시된 제품명, 일자표시에 관한 사항(소비기한 등) 등 주요 표시사항을 가려서는 아니된다’고 한 수입식품 표시 규정과 대조된다.
식약처는 하이트진로 사례가 나쁜 전례로 남을 것을 우려해 즉각 제도 보완에 나설 방침이다.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 관계자는 “하이트진로의 문구가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판단하고 표시사항을 가리지 않도록 지도할 계획”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문구, 이미지 등이 표시사항 가리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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