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나뿐인 열쇠고리 만들어요”…마을 굿즈 만드는 홍성 어르신들[현장에서]
벽화도 그리고 의상 디자인도 제작
열쇠고리 만들기 열중 “글씨 못 써 아쉬워”
판매 수익금은 산불 피해 등 어려운 이웃에
충남 홍성군 천태리1구 마을회관 어르신들은 서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마을회관에서 미술수업을 받는 이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각자가 그린 그림을 두고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미술수업이 진행된 지도 5년째다. 요즘엔 어르신들 작품이 마을을 상징하는 ‘굿즈(기념상품) 디자인’으로 탄생한다.
천태리1구 마을회관에는 지난 11일 80~90대 어르신 7명이 굿즈 디자인 수업을 듣고 있었다. 책상 앞에는 이름이 삐뚤빼뚤 적힌 스케치북과 24색 크레파스, 사인펜이 놓여 있었다. 십이지신 동물 캐릭터가 인쇄된 용지도 있었다.
어르신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오늘은 내가 예술인’이라는 글귀와 함께 각자가 그린 천태리 풍경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지난해 패션쇼 수업에서 이들이 직접 만든 티셔츠다.
이날 어르신들은 일주일간 그려온 그림들을 펼쳐 보였다. 스케치북마다 그림으로 빼곡했다. 이 그림들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열쇠고리로 탄생할 작품들이다.
이주순 할머니(80)는 꿩을 그려왔다. 평가는 냉혹하면서도 유쾌했다. 정옥희 할머니(86)는 “잘 그렸는데 색칠은 빵점이여”라며 “색칠을 잘못 해서 털이 다 뽑힌 꿩처럼 보여유. 제목을 ‘사람이 털을 뽑다 놓쳐버린 꿩’으로 지어야겠네유”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수업은 주남수 신작로문화예술연구소 강사가 진행한다. 매번 다른 굿즈를 만드는데, 주 강사가 TV영상을 이용해 다음에 그릴 내용을 설명하면 어르신들이 일주일간 그에 걸맞는 그림을 그려온다. 이들 작품은 달력을 비롯해 떡메모지·스마트톡(그립톡)·마우스패드·텀블러 등으로 제작된다.
“우리는 디자이너니까 베끼면 안 돼유.” 주 강사가 말하자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수업은 홍성군이 진행 중인 ‘천태리 할배·할매 나만의 굿즈디자인에 도전하다’ 프로그램이다. 홍성군은 지역 문화인들이 모인 신작로문화예술연구소와 함께 2019년부터 이곳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각종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제5차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된 홍성군은 오는 10월 문화도시로의 최종 지정을 기대하고 있다.
수업 주제는 매년 다르다. 지난해에는 어르신들이 직접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모델로 나서는 패션쇼도 열었다.
“똥파리를 그렸으면 똥파리라고 쓰라고요? 글씨를 알아야 쓰지유. 학교를 못 댕겨서 글을 잘 몰라유.”
최고령인 정순선 할머니(97)의 말 한마디에 주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한글 쓰기도 틈틈이 가르쳐드리기로 했다.
주 강사는 “어르신들이 매주 한번밖에 열리지 않는 수업시간을 손꼽아 기다리신다”며 “직접 만든 작품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씀하시곤 한다”고 설명했다.
정옥희 할머니는 “어버이날에 손녀들이 집으로 찾아왔길래 이제껏 그렸던 그림을 자랑했다”면서 “손녀딸이 ‘나도 그림을 잘 그린다’며 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더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꽃 그림만 그려온 정화순 할머니(80대)는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벌을 볼 수가 없어서 꽃만 그리고 벌은 그리지 못했다”며 “꽃이 피어도 벌이 찾아오지를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오는 7월14일까지 굿즈 디자인 수업에 참여한다. 9월에는 그간의 작품을 선보이는 발표회를 연다.
신작로문화예술연구소는 어르신들 작품을 온·오프라인 판로를 통해 판매하기로 했다. 판매 수익금 대부분은 최근 산불 피해를 본 홍성 주민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지만 일부는 어르신들에게 돌아가도록 할 계획이다.
주 강사는 “본인 그림이 작품으로 탄생할 때 자부심을 느끼고 손자와 손녀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여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용록 홍성군수는 “어르신들께 다양한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해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며 “어르신들과 지역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작품 상품화까지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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