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100억마리 실종…제주도 1.8배 크기 꽃밭 필요해
자취 감춘 벌 살리려면 밀원 면적 2배 늘려야
벌이 사라지고 있다. ‘세계 벌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은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유럽 등지에서 시작된 꿀법군집붕괴현상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실종되고 있다. 벌의 실종은 인간에게도 치명적이다. 벌이 없으면 농업 생산량 저하와 식량난이 발생한다.
꽃에서 꽃을 옮겨가며 화분을 실어나르는 꿀벌이 생태계에서 사라지면, 곤충에 의해 수정되는 식물 대다수가 번식할 수 없게 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1종에 해당하는 작물이 벌의 수분 매개에 의존한다고 설명한다. 그린피스는 사라져 가는 꿀벌을 되살리기 위해 벌의 먹이가 되는 꽃과 나무인 밀원자원을 현재 수준의 두 배로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벌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린피스는 지난해 9~11월 양봉업계에서 수거하는 벌통 50만개가 텅텅 비었다고 보고한다. 개체 수로 따지면 벌 100억 마리다(벌통 1개당 1만5천~2만 마리). 그린피스는 야생벌의 처지는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한다.
벌은 다양한 원인으로 사라지고 있다. 살충제, 기생충, 응애 등 천적을 비롯해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생태계 엇박자 현상, 밀원 수 부족으로 인한 영양 실조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린피스는 이 가운데 기후변화를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벌은 3월이면 월동을 마치고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봄꽃들이 해마다 빨리 피고 지면서, 동면에서 깬 벌들이 채집할 꿀과 화분이 부족해졌다.
변온동물인 벌은 겨울철 벌통 안에 머물며 활동량을 줄이는데, 일부 벌들은 따뜻해진 겨울에 봄인 줄 알고 밖으로 나가고 여왕벌은 봄이 온 줄 알고 알을 낳기도 한다.
사는 방식에 혼란을 겪은 벌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한국의 꿀벌 폐사율은 2023년 초 약 60%를 넘어 기존 20%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밀원 자원이 빠르게 줄어든 것도 벌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양봉산업법상 밀원식물은 매실나무, 동백나무 등 목본 25종과 유채, 해바라기 등 초본 15종이다.
보고서가 인용한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밀원 면적은 2020년 기준 14만6천ha로, 1970~1980년대 대비 약 70%(47.8만ha→14.6만ha) 감소했다. 제주도 면적의 1.8배, 여의도 면적의 1145배 수준의 밀원 면적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천연 꿀 70%를 생산할 수 있는 아까시나무의 경우 1980년대까지 32만ha 분포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3만6천ha 정도만 남았다.
밀원이 사라진 데는 다양한 토지 개발 활동, 잦은 강수 및 이상 고온·저온 현상으로 인한 식물 생태계의 변화, 잦은 산불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린피스는 국내 꿀벌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최소 30만ha 이상의 밀원 수 재배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벌통 하나에 사는 꿀벌들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최소 30kg의 꿀이 필요하고, 총 250만개 이상 벌통에 사는 양봉꿀벌과 재래꿀벌, 야생꿀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30만ha 밀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청이 올해 계획한 밀원수림 조성 면적은 150ha로, 보고서는 30만ha 밀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린피스는 밀원면적 확대를 위해 국유림과 공유림 내 국토 이용 계획과 조림·산림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지역 특화형 밀원수를 심고 보급한다면 현 상황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도심 등 생활권에 녹지를 조성해 화분 매개 서식지를 확대하고, 앞서 제안한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 범정부적 노력을 펼칠 수 있도록 국무총리 산하 ‘꿀벌 살리기 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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