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김재원 징계’ 후 보수 총집결, 5‧18 광주 민심은?

광주=변문우 기자 2023. 5. 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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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에 대부분 싸늘…“尹, 어느 낯짝이라고 광주에 오나”
‘사법 리스크’ 野에 실망도 “여야 모두 싫어…정치 관심 끊었다”

(시사저널=광주=변문우 기자)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으로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광주 민심은 차게 식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광주 민심은 10%대 박스권에 갇힌 모양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김기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의 징계를 내리고 18일 광주에 총집결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도 2년 연속 광주를 찾았다. 오월영령을 달래기 위한 보수의 노력은 광주 시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17~18일 광주 거리에서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에 시민들이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학생부터 노인까지 성난 민심 "與 진심 못 믿겠다"

17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엔 참배하러 온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를 환영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민주의문 주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일부 중년 남성 지지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그립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에 살기 힘들다"라며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광주 각화중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5·18 기념 견학을 오기도 했다. 정주연(14)양도 학교 친구들과 함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고 싶어서 참석했다"며 "코로나19도 끝나고 날씨도 좋아서 나들이 오듯 들뜬 심정으로 왔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님이 온다고 해서 설랜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이른바 '김재원 극우 발언' 논란과 '한·일 정상회담' 여파가 광주 여론에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18일 오전 윤 대통령이 5·18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를 찾자 일부 시민들은 "어떻게 낯짝도 두껍게 여기 올 수 있나"라며 항의했다. 현장에 있던 광주시민 조진경(51)씨도 윤 대통령에게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달라"며 "왜 이렇게 일본만 추종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기념식 근처는 윤 대통령의 발걸음으로 경비가 한층 강화된 분위기였다. 일부 유튜버들이 현장 촬영을 위해 민주의문 근처로 모여들자 경호원들은 "촬영하지 말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이에 '윤석열 정권 타도, 김건희 수사하라'는 팻말을 들고 있던 한 시위자는 "뭐가 무서워서 우리를 못 들어가게 하냐. 광주가 무섭나"라며 "윤 대통령은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광주시민인 김형남(48)씨도 "대통령이나 여당이나 한심하다. 이 사람들은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꾼'"이라며 혀를 찼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양향자 무소속 의원도 이날 기념식 직후 시사저널과 만나 "대통령이 지도자답게 어머니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데 아직도 안 그러고 있다. 언행불일치"라며 "오월어머니회 분들도 마음이 무겁고 서운하다고 계속 말씀하시더라. 제 마음도 좋지 않다"고 전했다.

광주의 중심인 금남로에서 만난 청년들도 정부여당에 쓴 소리를 전했다. 5·18 전야제를 즐기러 온 대학생 강한나(24)씨는 "얼마 전 여당 지도부의 5·18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는 당에서 제명해도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당 윤리위원회의 징계도 성에 차지 않는다. 분명 국민여론에 반한다고 생각한다"며 "현 분위기로는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호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생인 김준형(26)씨도 "정부여당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신뢰가 높지 않다. 공약들을 말로만 한다고 하면 누가 못하냐"라며 "5·18 정신도 헌법에 수록하겠다더니 1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믿지 않는다"라고 일침을 날렸다. 이어 윤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도 "여기 오는 건 누가 못하겠냐. 진정성 없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전야제에서 광주시민들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여당 지도부인 김병민 최고위원은 무대 맨 앞의 자리에 앉자마자 한 시민에게 삿대질을 당했다. 해당 시민은 김 최고위원에게 "국민의힘(최고위원)인데 왜 무대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나"라며 "뒤로 가라. 보기 싫다"고 고성을 질렀다. 또 일부 시민들은 이준석계 인사들에게도 "국민의힘(소속)이면서 왜 이렇게 광주에서 돌아다니냐"라며 "그만 나대고 얌전히 자리에 앉으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가운데)씨·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왼쪽)·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 열린 전야제에 참석해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尹 방문에 긍정 반응도…천하람 "일관된 노력 중요"

반면 여야 모두에 실망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특히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와 '코인 논란'으로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향한 지탄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개인택시 운전사인 박정섭(71)씨는 "원래는 정치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치판을 보고 '스스로 바보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정치에 관심을 끊었다"고 했다. 이어 "윤 대통령, 이재명 대표,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싫다"며 "간간히 들려오는 (정치권) 소식들도 한심할 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여당의 최근 변화된 행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도 일부 보였다. 광주송정역에서 만난 시민 김준현(28)씨는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으로 민주당에 많이 실망했는데, 정부여당은 그래도 변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기념묘지 측의 한 관계자도 "윤 대통령도 오늘 두 번째 직접 오시기도 하고 많이 노력하신다는 것이 느껴진다"라며 "앞으로 5.18 진상규명 등 남은 숙제들을 마저 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월어머니집 전야제에 나타났을 땐 주변 시민들이 환호하기도 했다. 어머니들은 이 전 대표에게 "준석이 오랜만에 또 왔네"라며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해당 자리에는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씨도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해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가 연출됐다.

광주를 찾은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민주당도 각종 리스크에 걸린 만큼, 호남 시민들도 국민의힘을 한번 지켜보자는 단계로 들어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1980년 5월에 그치지 않고 2023년, 나아가 2030년 미래의 호남 비전을 얘기해야 한다"며 "우리 공약 사항이니까 챙기겠다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일관성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노력하면 호남에서도 알아봐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에서 참석자들이 민주평화대행진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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