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文 대학, 한전공대에 칼 들이대는 尹정부

김건호 2023. 5. 18.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를 지원하기 위한 1600억원대의 한전 출연금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전남지역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역에선 개교 1년 만에 정부와 여당의 한전공대 흔들기가 본격화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정부와 여당은 애당초 누적적자 45조원의 한전이 1조6000억원이나 지원금을 내서 특성화 대학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광주과학기술원 등 이미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고등교육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낳은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한전공대 논란이 또다시 소환됐다.
사진=뉴스1
◆한전 빚이 45조인데 대학을 지원한다고?

18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한전 재무 위기를 고려해 에너지공대에 대한 한전 올해 출연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관계 부처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전 출연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창양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에 출석해 “한전 상황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공대에 출연하는 것도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출연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즉 한전의 40조 원대에 이르는 적자규모 때문에 국민이 내야 하는 전기료마저 올리는 상황인데, 설립부터 운영까지 13년간 1조6000억원이 드는 한전공대를 지원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 인식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이 장관 발언 후 전남지역 시민단체 및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의 반발로 이 문제는 공론화됐지만, 사실 정부 안팎에선 한전의 지원금 축소가 불가피하단 여론이 예전부터 있었다. 올해 두 차례 전기요금 인상에도 한전 경영난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 한전공대에 대한 지원금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은 전기요금 역마진 구조로 2021년부터 올 1분기까지 45조원의 적자가 쌓였다. 현재 한전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25조7000억 규모의 자구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의 출연금 규모를 하향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에너지특화대학 설립과 각종 지원을 통해 향후 에너지산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기대했던 나주를 중심으로 전남지역에선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주와 전남지역에선 한전공대가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나주 혁신도시와 함께 8.2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조성, 초강력레이저 연구시설 유치 등으로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전남지역 미래를 개척하는 중추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했다.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전공대는 국가 균형발전과 에너지분야 세계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제정해 만든 대학”이라며 “개교 1년 만에 정부·여당이 한전공대 흔들기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실국장 정책회의에서 “산업부의 출연금 전면 재검토는 시·도민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정의당 소속 전남도의원들은 지난 15일 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여당이 지난 3월 표적 감사에 이어 이번에는 출연금 재검토 발언으로 또 다시 한국에너지공대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22년 3월 2일 열린 제1회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입학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영상 축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대는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 연구·창업 대학이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학이라서? 한전 적자 때문에?

호남지역이 대대적으로 반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전공대 설치 자체가 사실상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당시 호남 맞춤형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전임 정부가 세계유일의 에너지특화대학으로 설립한 대학을 후임 정부가 각종 이유로 지원금을 축소한다면 과연 정부정책을 어떻게 믿겠느냐는 게 반발하는 주된 이유다.

한전공대 설립은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호남용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한전공대 설치를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밀어붙였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5년 이내에 대학의 4분의 1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고, 지방 대학과 지역 소재 과학 특성화 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이미 많이 있는데 왜 한전공대를 신설하느냐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됐다.

한전공대는 설립 논의 초기부터 한전의 천문학적 부채 등 재정문제뿐만 아니라, 기존 과학기술원과의 역할 중복 문제에서부터 입지선정을 두고 광주광역시와 나주시의 갈등, 대학시설 미준공 문제 등 각종 논란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윤석열 정부는 감사원을 통해 한전공대 설립 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한국전력, 산업부, 교육부, 나주시 등 4곳을 대상으로 한전공대 설립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에너지공대 캠퍼스 조감도.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도 한전공대 설립인가를 취소하거나, 대학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진 않다. 정부는 지난해 말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결정된 올해 310억원의 중앙정부 출연 부분은 예정대로 집행할 방침이다. 또 최근 한전 산하 전력기금사업단이 요청한 2023년 에너지공대 사업 지원 계획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정부 예산안 편성 시 취약계층에 대한 보편적 전기 공급과 에너지 복지 등 기금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발굴·추진하려는 것”이라며 “에너지공대 지원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 위원은 “정부는 한전공대에 대한 지원금 전면 재검토의 칼을 빼 들면서 최근 전기료 인상에 나섰다. 즉 한전공대에 대한 지원금 축소는 단순히 전임 정부의 공약에 대해 칼을 들이대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향후 10년간 1조6000억원을 지원해야하는 한전의 빚잔치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