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20년차 보좌관 “내가 尹 비서라면 ‘도청 농담’ 건배사 썼을 것”

박국희 기자 2023. 5. 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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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인 폴 공(Pual Kong)씨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폴 공씨는 이날 국회 여야 보좌진을 대상으로 '미국 의회 어떻게 운영되나?'라는 주제의 특강을 했다. /이덕훈 기자

“제가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이었다면 지난 달 국빈 방미 만찬에서 ‘도청’을 소재로 하는 농담으로 건배사를 썼을 거예요. 물론 ‘아메리칸 파이’ 열창도 너무 좋았지만 미국 정계에는 ‘SNL(미국의 시사 풍자 코미디 프로그램)룰’이라는 게 있거든요. 정치인들이 자신을 낮추는 농담으로 주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문화가 있어요.”

미국 상원 의회에서 20여년의 보좌관 경력을 갖고 있는 폴 공(45·Paul Kong)씨는 18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미는 이번이 12년 만이었는데 반도체, 배터리 등 그 사이 한국의 위상이 너무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국 대통령이 왔다고 글로벌 미국 기업 CEO들을 워싱턴으로 부르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저마다 한국과 파트너를 맺기 위해 CEO들이 찾아왔다. 한국의 레벨이 달라진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당시 한미 사이의 예민한 이슈였던 ‘도청’ 사태를 농담으로 누그러 뜨려도 좋았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어떤 농담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미국이 그렇게 도청을 잘한다면 내가 지금 말할 건배사 원고도 미리 다 입수한 것 아니냐?’ 수준의 농담이 생각나는데, 한국 정치 문화와 달리 미국 정계는 대통령부터 일반 의원까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정말 많이 한다”고 했다. 실제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재선 도전에 올해 80세인 고령의 나이가 우려스럽다’는 미국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나도 내 나이가 몇인지 모르겠다”고 농담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는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환호하고 있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이민 2세대로 미국 태생의 공씨는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2004년 부시 정부를 시작으로 2013년 오바마 정부까지 척 헤이글(오바마 정부 국방장관) 상원의원 정책실장,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 정무 보좌관 등을 지냈다. 현재는 미국 싱크탱크 루거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있다. 신문사 워싱턴 특파원 출신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의 초청으로 이날 국회에서 여야 보좌진 30여명을 대상으로 ‘미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이 들려주는 미국 의회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강연에서 공씨는 “어떻게 상원의원 보좌관 생활을 시작했느냐”는 여야 보좌진 질문에 “20대 초반 처음으로 모신 보스가 척 헤이글 의원이었다. 비서관으로 들어간 지 2년 만에 정책실장이 됐다”고 말해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공씨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척 헤이글 의원은 모시기 힘든 사람이었다. 화를 화끈하게 내는 경상도 스타일”이라며 “나는 한국 부모님을 상대하는 것 같아서 편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이런 걸 견디지 못하고 다 나가더라. 내 위에서 다 나가다 보니 내가 2년만에 정책실장이 됐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공씨는 “모시기는 힘들었지만 결국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 많이 배웠다. 결국 국방장관이 되지 않았느냐”고 했다.

2015년 정의화 국회의장 당시 국회 대변인이었던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과 정 의장의 당시 한미 의장 회담 성사에 폴 공이 큰 역할을 했다”고도 했다. 회담 성사 여부가 여의치 않던 차에 폴 공씨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미 정가에서도 알아주는 골프광’이라는 ‘고급 정보’를 최 의원에게 귀띔했다.

폴 공씨는 “당시 인천에서 대륙간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 골프 대회가 있었는데 미 오하이오 출신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가 코스를 설계한 골프장이었다. 존 베이너 의원도 오하이오 출신”이라며 “이러한 인연을 고리로 한국에서 열린 골프 대회의 초청장을 정 의장 명의로 보냈다. 골프 대회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언제든 미국에 오면 만나겠다’는 답신이 와 회담이 성사된 걸로 안다”고 했다. 최 의원은 “미 정가에서 이러한 사소한 정보로도 일이 풀릴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고 했다.

폴 공씨가 미국 상원에서 보좌했던 척 헤이글(왼쪽) 전 미국 국방장관. 오른쪽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블룸버그

한국 여야 보좌진들은 미국 의회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한 보좌관이 “미국 의원들의 보좌관은 몇명이냐. 사무실은 얼마나 크냐”고 묻자 공씨는 “하원의원은 18명까지 보좌관을 두고 상원의원은 주 크기별로 30~40명까지 보좌관을 둔다”며 “워싱턴 의회 사무실은 거의 19세기 공장 수준으로 사람들이 꽉꽉 차있다. 면담도 사무실에서는 할 수 없어 커피숍에 가야한다”고 했다. 현재 미 의회에는 70여명의 한국계 보좌진이 있다고 한다.

여야 보좌진들은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회 점거 사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기도 했다. 공씨는 “가짜뉴스, 팬덤정치, 진영논리의 폐해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정계의 문제기도 하다”며 “8년간 대통령을 했지만 여전히 오바마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인이 아니라고 믿는 미국인도 많다. 그래서 미국 정치권도 이러한 병폐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오른쪽)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법제사법위원회 사생활·기술·법소위 인공지능(AI) 청문회에서 크리스 쿤스(델라웨어·민주)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선 올트먼 CEO는 AI 모델의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 규제 개입이 중요하다고 소견을 밝혔다. /연합뉴스

미 의회는 최근 인공지능 ‘챗GPT’ 개발자를 청문회에 불러 미 대선에 미칠 가짜뉴스 규제 등에 대한 ‘열공 모드’에 나서며 제도 마련에 들어갔다. 공씨는 “미 의회에는 강제 소환권이 있어서 사실상 검사 역할을 한다. 누구든 부르면 나와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소환에 거부하면 연방 검찰에 넘겨 처리하기 때문에 CEO든 누구든 청문회에 나와 진술을 한다. 한국 국회에도 이런 소환권 부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씨는 “그럼에도 한국 청문회가 너무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더라”며 “한국이나 대만 국회의 본회의에서 의원들끼리 몸싸움을 하는 것은 사실 신기했다”고 했다.

“미국도 정치인들은 욕을 많이 먹어요. 대통령 지지율보다 늘 정당 지지율이 낮게 나옵니다. 수준 낮은 의원들도 많아 늘 이슈가 나오죠. 하지만 200년이 넘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는 정치 사이클이 깁니다. 새로운 이슈는 없어요. 찾아보면 대부분 과거에 다 있었던 일들이에요. 과거에도 트럼프 같은 인물은 있었을 거고 그런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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