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설픈 아재들이 잘나가는 여행 유튜버들 뺨친 까닭('텐트 밖은 유럽')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만 해도 tvN 예능 <텐트 밖은 유럽>이 쉼 없이 찾아올 시리즈가 될지 몰랐다. 물론 좋은 성과를 거뒀고, 프로모션하기 좋은 콘셉트이고, 보증된 힐링 콘텐츠라는 점에서 훌륭한 포맷이라 생각했으나 시즌2가 끝나자마자 시즌1의 멤버들이 바로 이어 여행을 떠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반가웠다. 배우들이 뭉쳐서 여행을 떠나는 예능이 올해 초부터 줄을 잇고 있고 있지만 노르웨이로 날아간 이 무해한 아저씨들의 두 번째 여정은 드넓은 대자연에서 설중 캠핑이라는 캠퍼들의 낭만과 본격 여행시즌에 맞춰 떠나는 설렘을 어김없이 자극한다.
지난해 여름 처음 찾아온 <텐트 밖은 유럽>은 길고 긴 팬데믹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나름 용기 있고 반가운 여행예능이었다. 나영석 사단에서 독립(?)한 유해진과 함께 진선규, 윤균상, 박지환 등 예능 경력이 일천하고, 예능화된 캐릭터가 전무한 구성으로 과연 어떻게 심심함을 이길까 궁금했다. 그러나 이들은 1482km의 길을 8박 9일 동안 렌트카를 타고 달리고, 텐트를 치고 자면서 그야말로 새로운 풍광으로 로망을 선사했다.
6개월 만에 다시 뭉쳐서 떠난 노르웨이 여행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항 렌터카를 빌리고 장을 보는 과정부터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 이 멤버들의 가장 큰 매력은 오히려 능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요즘 여행예능으로는 드물게 전원 언어가 안 되고, 검색, 번역앱 활용 등 스마트폰 사용도 느린 편이며, 박지환을 제외하곤 캠핑 경험도 거의 없다. 최근 여행 콘텐츠의 핵심으로 떠오른 현지인과의 교류는 당연히 없다. 렌트카 직원에게 롤렉스를 차고 있다며 스몰토크를 하지만 농을 치는 한국 아재 개그의 일환으로 봐야한다. 여행 유튜버들의 콘텐츠가 여행예능을 잠식하고 있는 오늘날, 노르웨이라는 난이도 있는 여행지에 당도한 이 어설픈 아저씨들에게서 초기 여행예능들이 담아냈던 낯섦이 주는 적당한 긴장감이 감돈다.
사실 이 지점이 흥미롭다. 여행예능의 홍수 속에서 나름 콘셉트의 진화와 다양화를 추구하는 요즘, 외지에 나가 헤매고 우왕좌왕하고 말이 잘 안 통해서 식당 주문도, 물건 사는 것도 버거운 초창기 버전으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스토리텔링이 강하고 환경 설정이 확실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재미가 된다. 무언가를 드러내야 하거나 어떻게 보여야 하는 배우의 톤과 자세를 가진 사람도 없다.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 능력, 콘셉트가 별달리 없다보니 비단 아재개그가 아니더라도 분위기가 정겹다. 배우들의 예능이라기보다 꼬인 데 없는 아저씨들의 여행이란 표현이 보다 적합해 보인다.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네 명의 무해한 관계와 밝은 에너지는 여행의 설렘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기분을 좋게 만든다. 텐트를 꼭 쳐야 하니 이들의 하루 일과에는 일몰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데드라인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틀어진 계획, 비껴가는 예상에 조바심을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덕이다. 평범하고 익숙하지만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해진을 비롯해 좋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함께 만드는 무공해 바이브에 편안함과 로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배우들로 꾸려진 다른 여행예능처럼 중심이 되는 주연급 큰 형님과 막내가 존재한다. 하지만 유해진을 중심에 놓고 그를 보좌하고 친해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들에겐 보여주고 싶은 욕구보다 스스로 즐기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이 더욱 크다. 프로그램 준비 단계에서 여행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해보자는 제작진의 요청에 각자가 보인 반응을 1회에 꺼내어 보여준 이유가 다 있다. 이른바 진정성의 강조다.
그렇다고 단순히 좋은 사람이 전부가 아니다. 이 진정성은 라이프스타일과 맞닿는다. 이 멤버의 특이한 매력, 그리고 시즌2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라이프스타일 코드의 유무다. 첫 번째 여행에서 유해진과 당시 러닝에 푹 빠져 있던 진선규는 틈이 나면 조깅을 했다. 심지어 진선규는 당시 실제 삶에 많은 도움과 영감을 준 동호회의 복장 그대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시즌3은 본격 캠핑이다. 드넓은 호수, 얼음 바다, 쉽게 보지 못하는 자연 풍경을 가진 낯선 나라 노르웨이에 국내 여러 캠핑장에서 만나볼 법한 널리 알려진 캠핑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오로라나 빙하도 궁금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펼쳐 보이는 익숙한 혹은 궁금한 장비들이 코로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캠퍼들의 관심과 로망을 그대로 자극한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 익숙한 캠핑의 묘미는 대리체험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여차하면 주말에 근교로 떠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많은 캠핑 프로그램이 있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취미와 취향을 드러내거나 서핑 예능처럼 문화를 소개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대부분 잘 안 됐다. 이 네 명의 아저씨들은 설중 캠핑에 단단히 대비하고 북한산에서 마주칠 테크니컬한 옷을 입고 있지만 전문가 행사를 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이들이 담아내는 라이프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고 나아가 로망의 불을 불편함 없이 지필 수 있는 이유다. 5%대가 넘는 높은 시청률은 기대감과 반가움의 반영이다. 무해한 에너지와 진정성 있는 즐거움이 지속적으로 시청률이 하락한 시즌2와는 분명 다른 기대를 갖게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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