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삭감 크면 무효”… 급여 50% 깎는 금융권 갈등 고조
국민·산업·기업은행 등도 임금피크제 소송 中
임금 50% 깎는 금융권…직원들 “나가란 소리냐”
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을 깎는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더라도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면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평균적으로 급여 절반을 깎는 등 다른 업종보다 삭감 폭이 큰 금융권은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근 금융권에선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갈등이 다시 점화하고 있다.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임금을 지나치게 많이 깎는 임금피크제는 문제가 있다는 재판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되면서 늘어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합의한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KB금융그룹의 신용정보 전문 자회사인 KB신용정보 전·현직 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 및 퇴직금을 달라’고 한 소송에서 지난 11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총청구액 5억4100여만원 중 사실상 대부분인 5억3800여만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은 임금피크제의 시행으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됐다고 볼 수 있다”며 “근무 기간이 2년 늘어났음에도 만 55세 이후 받을 수 있는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손해의 정도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KB신용정보는 2016년 만 55세부터 적용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2년 연장하는 대신 연봉의 45~70%를 업무 성과와 연동해 지급하는 조건이다. 만약 직원들은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지 않았다면, 만 55세부터 기존 정년까지 3년간 300%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적용 후 저성과자의 경우 55세부터 5년간 받는 총액이 기존 연봉의 225%에 불과했다.
임금피크제는 금융권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논쟁거리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총파업에서도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개선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지난해 합리적인 기준 없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판결 이후 KB국민은행과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의 일부 직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권은 임금피크제를 다른 업종보다 비교적 빠르게 도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금융업 분야 사업장 3만1533곳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2만1187개(67.2%)다. 국내 전체 기업으로 봤을 때 임금피크제 시행 기업이 22%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급여 삭감 폭도 다른 업종에 비해 크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삭감률이 5%, 현대차·LG전자·KT 등은 10%지만 KB국민은행과 신한금융투자 등 금융권은 평균 약 50%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은행 직원은 매년 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은행 임금피크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말 기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은행 직원 수는 총 2180명으로 2019년 말보다 656명 증가했다. ▲2019년 1.28%(1524명) ▲2020년 1.48%(1741명) ▲2021년 1.91%(2204명) 등 오름세다.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이 늘며 은행 내부에선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회사와 직원 간 임금 지급 문제도 있지만, 이젠 내부에서 세대 갈등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임금피크 직원은 임금 삭감과 함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후선 업무로 배치된다. 임금피크제 인원이 많아질수록 다른 근로자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경우 임금피크제를 통해 회사에 남는 게 오히려 손해라 고용 연장이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조기 퇴직 권고로 받아들이는 직원이 적지 않다”면서 “국책은행의 경우 시중은행에 비해 임금피크제를 택하는 직원은 많지만, 이 역시 희망퇴직자에게 임금피크제 기간 연봉의 45%만 지급하는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 여러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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