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리는 방탄복’ 장병 입혔다... 부실 알고도 5만벌 보급
‘테스트 받는 곳만 방탄 소재 보강’
납품사 설계안 받고도 제조 승인
지난해 우리 군에 납품돼 장병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탄복 4만9000여벌 중 다수가 군이 요구하는 방탄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일부 방탄복은 총탄에 아예 관통되기도 했다.
이런 방탄복이 생산되고 성능 시험까지 통과해 납품될 수 있었던 것은, 군납 업체가 방탄복의 실제 성능과는 무관하게 성능 시험만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방탄복을 ‘시험 맞춤형’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방탄복 품질 관리를 맡은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기술품질원의 국방과학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는 군납 업체가 이런 꼼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탄복 제조·납품을 승인했다.
18일 감사원이 공개한 ‘장병 복무여건 개선 추진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2021년 12월 A군납업체로부터 방탄복 5만6280벌, 107억7800만원어치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 군의 성능 기준에 따르면, 방탄복은 착용자의 활동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또 특정한 거리·각도에서 발사한 총탄을 막아내야 한다. 이렇게 발사한 총탄을 맞은 방탄복은 어느 부위에서건 관통되어서는 안 된다. 또 목 둘레와 좌우 옆구리 부분 등은 방탄복이 안쪽으로 찌그러지더라도 그 깊이가 44㎜를 넘어서는 안된다. 방탄복이 이보다 깊게 찌그러지면 방탄복 자체가 착용자의 신체를 찔러 착용자를 죽거나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방탄복이 이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시험하는 방법도 정해져 있다. 목 둘레와 좌우 옆구리 부분에 대고 총탄을 발사해, 방탄복이 관통되거나 기준치 이상으로 변형되지는 않는지를 검사한다. 방탄복 가운데 부분이 아니라 가장자리 부분에 대고 총탄을 발사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이런 부분이 방탄복 가운데 부분보다 더 취약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A업체가 만든 방탄복은 군의 성능 기준을 전체적으로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업체의 방탄복은 방탄소재 50겹을 붙여 만들었는데, 목 둘레와 좌우 옆구리 부분에만 고밀도 방탄소재가 6겹씩 추가로 덧대어져 있었다. 성능 시험에서 이 부분들에만 총탄을 발사해본다는 것을 알고, 이 부분에서 기준치를 충족하도록 만든 것이다. 반대로 보통 방탄복에서 더 강한 방탄 성능을 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방탄복 중앙부에는 방탄소재 50겹만을 댔다. 이는 방탄복의 유연성을 방탄복 중앙부를 기준으로 측정하기 때문이었다. A업체는 2021년 3~4월 목 둘레와 좌우 옆구리 부분에 덧대는 방탄 소재의 양을 늘려가면서, 몇 겹을 덧대야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자체 시험까지 해본 것으로 드러났다.
A업체는 국기연에 이런 설계안을 제출했다. 국기연은 A업체가 특정 부위에만 방탄소재를 덧댔다는 것을 알면서도 A업체의 설계안을 일부만 수정한 채 승인해줬다. 그러면서 방탄복 성능 시험 실제로 수행하는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에는 A업체 방탄복이 특정 부위에만 방탄 소재를 추가로 덧댔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기품원은 정해진 시험 방식대로 목 둘레와 좌우 옆구리 부분에만 대고 총탄을 발사해, A업체 방탄복이 충분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이에 따라 A업체는 지난해 4월부터 방탄복 4만9622벌을 육군에 납품했다.
A업체가 방탄복을 납품하고 있는 도중에, 국기연에는 ‘A업체가 특정 부위만을 보강해 방탄 성능을 조작했다’는 민원까지 접수됐다. 그러자 국기연은 총탄을 맞추는 위치를 살짝 바꿔서 성능 시험을 다시 한 뒤,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재차 내렸다. 그러나 국기연이 조정한 위치도 방탄 소재를 덧댄 효과가 나는 곳이었다.
감사원은 A업체가 납품한 방탄복에 대해 별도 시험을 실시했다. A업체가 방탄 소재를 추가로 덧댄 부위를 피해서 총탄을 맞춰봤더니, A업체가 덧댄 부위에서 멀어진 곳일수록 방탄 성능이 떨어졌다. 일부 방탄복에서는 착용자의 명치 부분에 해당하는 방탄복 한가운데를 쏴봤더니 방탄복이 관통됐다.
감사원은 “국기연이 방탄복에 대한 품질 보증 업무를 소홀히 처리함으로 인해 군은 2022년 방탄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A업체의 방탄복을 납품받아 보급하고 있다”며 “이를 착용한 장병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A업체는 “방탄복은 ‘단순 구매품’이기 때문에, 규격대로 제작하고 구매 요구서에서 요구한 절차에 의해 시험을 하고 납품하면 되는데, 방탄복과 전혀 관계 없는 ‘양산 단계 품질 관리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감사원이 구매 요구서에 규정돼 있지 않은 절차에 따라 시험을 해서 나온 결과를 갖고 방탄복 품질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계약 조건에 따르면 계약 물품(방탄복)의 감독·검사는 국가계약법, 방위사업법, 품질관리규정 및 관계 규정에 따르고, 계약 상대자(A업체)는 위 법령·규정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돼 있다”며 “적용할 수 없는 규정을 적용했다는 A업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감사원은 또 “군 요구 조건을 작성한 국방부는 ‘방탄복의 모든 부위에서 방탄 성능이 충족될 것’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A업체 주장처럼 통상적으로 성능 시험을 하는 부위에서만 방탄 성능을 충족하면 그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A업체는 또 방탄복 중앙부에는 총탄을 방탄복에 대해 수직으로 쏘아 시험해서는 안 되고 30도, 45도 비스듬히 쏘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탄을 비스듬히 쏘게 되면 방탄복이 받는 충격이 크게 줄어드는데, 이때를 기준으로 관통 여부나 변형 정도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A업체는 감사원이 방탄복에 기준을 넘어서는 속도로 총탄을 쏘아 나온 결과까지 판단에 부당하게 반영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감사원이 직접 시험을 한 것이 아니라, 기품원의 공인 시험 기관에 (방탄복 중앙부를 시험해달라고) 사격 위치만 지정해주고, 해당 기관이 기준에 따라서 탄종·탄속을 시험해 나온 결과이며 감사원이 발사 각도를 임의로 조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효하지 않은 탄속의 측정 결과는 활용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감사원은 방사청에 A업체로부터 납품받은 방탄복 중 성능 기준에 미달하는 방탄복에 대해 A업체로부터 새로운 방탄복을 다시 납품받으라고 했다. 또 향후 A업체의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라고 통보했다. A업체 방탄복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한 국기연에 대해서는 담당자 2명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은 일반 장병이 착용하는 방탄복이 군의 성능 기준대로 제작되더라도 야간 위장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발견했다. 방탄복 겉에는 착용자가 각종 전투 장구를 달아놓을 수 있게 천으로 만든 띠(세폭직물)를 덧대는데, 방사청은 이 세폭직물도 적의 열상 감시 장비에 포착되지 않도록 위장 성능을 갖춰야 한다는 기준을 아예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 결과, 군이 최근까지 조달해온 일반 장병용 방탄복은 야간 작전 시 위장 성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야간 위장 성능 기준은 육군 특수전사령부 장병들이 사용하는 방탄복에만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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