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라리 소송 원한다는 한전 직원들

권유정 기자 2023. 5. 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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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이 한 달 넘는 진통 끝에 결국 인상됐지만, 한국전력공사의 누적된 적자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올해 연간 적자가 2조6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전 적자가 이렇게까지 불어난 건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 탓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데도 이번처럼 요금 인상에 매번 제동이 걸린다면 한전은 전기 판매단가가 구매단가를 밑도는 역(逆)마진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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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이 한 달 넘는 진통 끝에 결국 인상됐지만, 한국전력공사의 누적된 적자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애초에 인상폭 자체도 충분하지 않은 데다 내년 총선을 고려하면 올해 남은 기간에 추가 요금 인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한전 적자는 32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올해 1분기(6조1776억원)까지 누적 기준으로 보면 40조원에 육박한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올해 연간 적자가 2조6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요금이 오르기 전 예상 적자가 약 9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연간 6조~7조원 적자가 예상된다.

한전 적자가 이렇게까지 불어난 건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기요금 결정 체계 탓이다. 현행법상 전기요금은 한전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요금 조정안을 제출하면,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전기위원회 심의로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여론을 의식해 요금 인상을 꺼리는 정치 입김이 과도하게 반영돼 한전은 매번 요금 인상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최근 한전 직원들 사이에선 ‘차라리 주주들이 소송을 해줬으면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전은 주식 시장에 상장된 시장형 공기업으로 주주 의견을 반영할 의무가 있다. 과거에도 한전 주주는 원가 이하 요금 책정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며 정부와 한전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적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주주가 패소했지만, 정치가 개입하는 비정상적인 요금 결정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공론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내부에선 판단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 하는 데도 이번처럼 요금 인상에 매번 제동이 걸린다면 한전은 전기 판매단가가 구매단가를 밑도는 역(逆)마진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전도 적자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한전 적자는 국내 산업사상 최대 규모로 민간 기업이었다면 진작에 파산했을 수준이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다면 요금을 둘러싼 여론 압박이 있기 전부터 경영을 더 효율화해야 했다.

한전이 발표한 자구안이나 경영진 사퇴는 요금 인상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 요금은 원가와 수급에 따라 현실적인 수준으로 정해져야 한다. 요금을 올려야 할 이유가 충분한데 억지로 통제하면 언젠가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책임은 결국 다시 국민의 몫이 된다.

이번에 정승일 한전 사장은 사퇴 의사를 표명하며 “요금 정상화가 지연되면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 차질과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 에너지 산업 생태계 불안 등 국가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한전의 적자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이를 방치했을 때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작용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 당장의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요금의 정치화라는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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