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지하철 난동 제압…시민 구한 영웅? 살인자?
사건 사고가 많은 미국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말 많고 탈 많은 곳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뉴욕 지하철입니다. 24시간 운행하는 데다 이용자들도 각양각색이다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가만히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을 갑자기 뒤에서 밀쳐 선로로 떨어뜨리는가 하면 다른 승객을 이유 없이 폭행하거나 위협하기도 하고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조롱하기도 합니다. 물론 총격 같은 강력 사건도 없지 않습니다.
흑인 노숙자 제압한 백인 전직 해병…사고? 살인?
차도 많고 주차비, 통행료도 비싼 뉴욕에서 분명 유용한 교통수단이지만, 안전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렇다 보니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현지인들도 치안 문제에 민감하기 마련인데, 최근 뉴욕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건 하나를 놓고 미국 전체가 갑론을박에 빠졌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난 1일, 뉴욕의 지하철 안에서 30살 한 흑인 청년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24살 전직 해병대원은 그를 제압했고 이 과정에서 흑인 청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헤드록'이라고 부르는 목 조르기(choke hold) 기술을 사용했는데 장시간 풀어주지 않으면서 질식사의 원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사건 직후 경찰이 그를 풀어주면서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에 불이 붙었습니다. 반면 열흘 뒤 그가 2급 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되자 이번에는 보수 진영에서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없는 노숙인을 죽인 '살인자'라는 쪽과 외면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시민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영웅' 혹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쪽이 충돌한 겁니다.
피해자 쪽과 진보 진영에서는 사건 당일 피해자가 지하철에서 물리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협하지 않았는데 그토록 심하게 목을 조른 건 과잉 대응이었으며 경찰이 백인인 가해자를 입건하지 않고 석방한 것은 인종차별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CNN은 노숙인으로 정신 이상 증세를 가졌던 피해자가 "배고프고 목마르며 살기 위해 가진 게 없다.(he was hungry, thirsty and had little to live for)" 고 외쳤다고 전했습니다.
타인을 위한 희생…고의적 과잉 대응
인종 문제까지 얽힌 사안인 만큼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노숙인 문제는 사실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으로 별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과잉 대응으로 목숨을 잃게 한 가해자의 인종 문제까지 얽힌 사안인 만큼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노숙인 문제는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으로 별 이견이 없을 걸로 보이지만, 과잉 대응으로 목숨을 잃게 한 가해자의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사정이 조금 복잡합니다. 그가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본인이 아니면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고의로 과잉 대응한 것인지, 아니면 혹시 모를 반격에 대비해 완전히 제압하고자 한 게 비극을 부른 건지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 갈등에 대한 '반면교사'
사회적으로 판단이 쉽지 않은 사건이지만 반면 확실한 것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잘못된 정치권의 행태입니다. 이번 사건이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비화하게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 중 하나인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의 발언이었습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좌파의 범죄자 친화적 의제를 멈추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에게 거리를 돌려줘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실체 파악이 쉽지 않은 사안을, 단정적 표현을 써가며 정치적 대결을 부추기는 것은 사회 통합에 나서야 할 책임 있는 정치권의 모습이 아닙니다. 가뜩이나 심해지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 속에 우리 사회가 피해야 할 반면교사인 셈입니다. 이번 비극은 똑같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정치권은 물론 우리도 이런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한 번쯤 같이 고민해 볼 일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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