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왜 전두환을 단죄하지 못했나"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지금이라도 역사의 제 위치에 놓아야"
“전두환의 평화로운 죽음은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품게 마련인 한 가지 믿음에 대한 완벽한 부정이었다. 권선징악에 대한 부정.”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21년 11월 23일 사망했다. 소설가 정아은(48)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제 국민을 대량학살한 독재자가 천수를 누리고 사망한 일을. 여러 질문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동안 우리 공동체는 전두환을 단죄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 전두환은 그냥 자유롭게 산 게 아니라 대단히 풍요롭게 살다 사망했다. 이게 과연 법치주의 국가일까. 우리는 왜 그를 처벌하지 못했을까.”
원래는 전두환을 다룬 소설을 쓰려 했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 소설이 아닌 논픽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참고문헌 100여 권을 조사하고, 육군사관학교 출신 등 전두환 관련 인물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세상에 내놨다. '가까운 사람을 살뜰히 챙기던 소탈한 사나이'와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자행한 독재자'의 모순적 얼굴을 있는 그대로 추적해 드러냈다.
‘무데뽀 지도자’ 전두환은 갑자기 튀어나온 인물이 아니다. 이승만ㆍ박정희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계승한 게 그다. 지극히 한국적인 지도자라는 얘기다.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한국에선 빨리 발전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실현해내는 지도자가 국가 차원의 사랑을 받았다. 전두환은 그런 사회 공기를 기민하게 읽고 쿠데타에 나섰다. 집권 이후 국민 호감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두환이 이승만ㆍ박정희와 다른 점은 ‘특별한 가벼움’이다. 이승만ㆍ박정희도 차마 하지 못한 일을 부담 없이 저질렀다. ‘정의사회’를 부르짖으며 쿠데타를 일으키고는 정규군을 동원해 제 국민을 학살했다. 언론을 통폐합한 뒤 보도 지침을 내렸다. ‘상납금이 적다’는 이유로 재계 7위 국제그룹을 해체하기도 했다. 요즘 시세로 53조 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챙겼다. 기분이 좋을 때는 부하들에게 ‘억’ 단위의 돈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를 단죄할 기회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7년 전두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12ㆍ12 쿠데타, 광주 학살, 뇌물 착복 등 이유는 차고 넘쳤다. 2년 만에 풀려났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특별사면을 요청했다. “영ㆍ호남의 해묵은 지역감정을 해소하자”고 했다. 작가는 “대한민국이 시스템과 법치가 아닌 지도자 개인의 심기를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예시”라고 아쉬워한다.
이후에도 법과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미국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2020년 미국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로 들끓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연방군을 동원해 폭동을 진압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내란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군 서열 1위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연방군 투입을 반대한다”고 했다. 시스템은 이렇게 작동해야 한다.
작가는 “정치인이 줄기차게 전두환 단죄를 주장하고, 국회가 이를 위한 입법에 나서고, 검사가 집요하게 범죄를 추적해 법정에 넘기고, 판사가 바른 판결을 내렸다면, 전두환은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지 못했던 한국 사회는 엉거주춤 전두환을 지도자로 받아들였고 천수를 누리게 했다.
일부 사람들을 말한다. “그래도 전두환 시절이 살기 좋았다.” 전두환이 ‘경제는 잘했느냐’는 평가를 두고는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작가는 ‘의미 없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통할 수 있는 1980년대 권위주의 문화, 저달러ㆍ저유가ㆍ저금리의 3저 호황, 미국의 전폭적 지원은 어차피 다시 오지 않을 ‘지나간 과거’다.
중요한 것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전두환이라기보다 그 인물로 대표되는 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눈부신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시대, 강력한 지도자만 믿고 따르면 됐던 시대, 이웃사촌 간 공동체 의식이 끈끈했던 시대를 향한 그리움을 전두환이라는 개인에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우려는 여기에 있다. “이제라도 전두환을 역사의 제 위치에 놓지 않으면 사람을 천장에 매달아 ‘통닭구이’를 하던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현상이 갈수록 증폭되거나 또 다른 변종을 낳을 수 있다.”
작가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27)씨가 최근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5ㆍ18 피해자에게 용서를 빈 점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전우원씨에게 ‘사과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도 따르지만, 작가는 “시스템과 법치로 전우원의 행보를 뒷받침하는 것, 그렇게 해서 남은 신군부 세력이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고 주장한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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