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쓴 남편에게…‘아무 일 안 생겨’ 예방주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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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토머스 울프는 <무명작가의 첫 책> 에서 첫 책 출간 뒤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무명작가의>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목격한 나는 첫 책 작가와 책을 준비할 때 앞으로 경험할지 모를 그 감정에 대해 조심스럽게 경고하곤 했다.
출간 뒤의 경험과 감정도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이고, 과정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듯 각자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찌 됐든 작가의 몫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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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토머스 울프는 <무명작가의 첫 책>에서 첫 책 출간 뒤 혼란스러울 만큼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상태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표현했다.
내가 지켜본 많은 첫 책 작가도 그랬다. 책이 출간됐다는 순전한 ‘기쁨’, ‘설렘’, ‘보람’, 다 끝났다는 ‘허탈함’, 비판 또는 외면 받을까 하는 ‘두려움’, 많은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 삶의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기대가 무너질 때의 ‘좌절’과 ‘실망’, 악플이나 낮은 평점에 대한 ‘분노’와 ‘아픔’, 잘나가는 작가를 향한 ‘질투’, 내가 부족했다는 ‘자책’, 결국 편집자와 출판사가 부족했다는 ‘원망’ 등등.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목격한 나는 첫 책 작가와 책을 준비할 때 앞으로 경험할지 모를 그 감정에 대해 조심스럽게 경고하곤 했다. 그러다 몇 해 전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남편이 첫 책을 쓰게 됐다. 바로 곁에서 본 집필 과정은 예상한 것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다행히도 남편은 그 기간을 슬기롭게 보냈다. 그때 아내이자 19년차 편집자인 나는 무얼 했느냐 하면, 예방주사를 놓았다. 첫 책 출간 후유증에 대비한 예방주사. 작가들에게는 잘 정돈해 프로처럼 잘도 말했지만 남편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가감 없이 ‘매운맛’으로 이런 말을 늘어놓았다 .
책이 나와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세상은 그대로일 거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의 문은 열린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 분야가 그렇다. 출간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 판매지수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평점이 낮을 수도, 악플이 달릴 수도 있다./ (방송 출연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남편의 농담에) 당신은 김영하가 아니다./ (작가 인터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느냐 묻기에) 첫 책으로 인터뷰하는 작가는 극소수이니 기대 마라./ (북토크 홍보물을 보고 부러워하기에) 출간될 때도 팬데믹일 테니 어려울 거다 등등.
책이 출간됐다. 내 우려는 모두 빗나갔다. 책은 좋아하는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좋은 리뷰를 받았다. 남편은 방송에 출연했고, 인터뷰도 했다. 소규모로 독자와 만나는 자리도 있었다. 남편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감정 표현이 투명한 사람인데, 이상했다. 지금이 기쁘지 않냐고 물었다.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야. 기대하면 안 된다 했잖아. 땅에 발 딱 붙이고 있으려고.”
정신이 번쩍 났다. 남편을 위해 예방주사를 놓은 거라 생각했는데. 첫 책 작가가 느끼고 누려야 할 것을 내가 앗아간 듯했다. 평생에 단 한 번, 그 책으로 그때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빼앗은 거다.
출간 뒤의 경험과 감정도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이고, 과정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듯 각자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찌 됐든 작가의 몫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첫 책을 낸다는 건, 결국 쓰고 만들고 출간하고 그 뒤의 일까지도 포함한다. 그보다 더 이전, 혹은 더 이후까지도.
지금 첫 책이 될 글을 쓴다면, 혹은 책을 내고 싶지만 기회가 없고 거절받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기억해주기 바란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첫 책의 여정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 이 순간 경험하고 느끼는 것 또한 첫 책을 내는 과정이다. 중요한 점은 계속 그 과정을 이어가는 것. 토머스 울프의 말대로 “꾸준히, 멈추지 않고, 매일매일 쓰는 수밖에 없다는 엄숙한 진실”이다.
글·사진 김보희 출판 편집자
*그간 책을 만들고 파는 일에 대해 소개한 ‘책의 일’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오혜영, 김남희, 이은혜, 박태근, 유선, 정현수, 신유진, 지우, 한상언, 장동석, 김보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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