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눈으로 SLBM 포착…바다에 숨은 잠수함 잡아낸다 [현장르포]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 동승취재
남해상 해군 대탄도탄·대잠수함 훈련

지난 16일 부산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과 P-3해상초계기, 링스 해상작전헬기가 대잠수함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영상제공=해군]

S#1. 北 SLBM ‘꼬리잡기’

“훈련! 대(對)탄도탄 전투배치! 대탄도탄 전투배치! 훈련!”

함내 방송을 통해 구령이 떨어지자 승조원들은 일제히 구령을 복명복창하고 훈련태세에 돌입했다. 묵직한 긴장감이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DDG-991)’의 심장부인 전투지휘소를 휘감았다. 승조원들은 북한 탄도미사일 작전구역 내 스파이(SPY)-1D 레이더의 집중 탐색구역을 설정하고 탐지작전을 시작했다.

지난 16일 해군이 부산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실시한 대탄도탄·대잠수함작전 훈련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번 훈련은 세종대왕함이 앞장서고 해군의 공중 자산인 P-3해상초계기와 링스 해상작전헬기가 참여해 진행됐다.

훈련에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을 포함한 적 잠수함 여러 척이 식별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SLBM 발사 징후가 포착된 상황이 주어졌다.

잠시 후, 지휘소 레이더 작동수가 레이더체계 통제 모니터에서 미확인 물체를 발견했다. 이어 함내에는 “알림! 현시각 미상발사체 접촉, 대유도탄방어태세 1단계 설정, 대공 무장 즉각 사용준비!”라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세종대왕함이 추적·포착한 적 탄도미사일 제원은 공군 탄도탄작전통제소(KTMO-Cell)로 실시간 전송됐다. 신포 일대 해역에서 북동쪽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2발은 수 분 뒤 레이더에서 소실되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세종대왕함의 승조원들은 적이 쏜 탄도미사일의 ‘꼬리’를 집요하게 쫓아가며 유사시 한미 연합자산으로 요격할 수 있도록 바다 위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해내고 있었다.

16일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항해 중인 세종대왕함(DDG)의 전투지휘실에 김성필(대령(진)) 함장이 대탄도탄전 및 대잠전 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제공=해군]

S#2. 北잠수함과의 ‘숨바꼭질’

이날 세종대왕함은 대탄도탄 훈련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잠수함 훈련 임무를 수행했다. 적 잠수함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어뢰 공격을 가해온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세종대왕함은 수중탐지망을 통해 적 잠수함을 포착하자, 인근 해역에서 비행 중이던 항공 전력들을 불러모아 명운을 건 ‘숨바꼭질’에 들어갔다.

세종대왕함은 인근 해역에서 비행 중이던 초계기와 교신을 주고받으며, 적 잠수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항공기를 유도했다.

초계기는 적외선·전자기 센서를 통해 바다 속에 꼭꼭 숨은 적 잠수함을 찾아낸다. 잠수함이 떠오르거나 물속으로 들어갈 때 내뿜는 물의 온도차이나 통신 전파를 쫓기도 한다. 또 탑재된 자기변형탐색기(MAD)를 통해 물속에 숨은 ‘쇳덩이’인 잠수함을 찾아낸다.

세종대왕함의 뒷편에서 날아온 초계기는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해 고도를 100m 이하로 낮추고 ‘능동 소노부이(sonobuoy)’ 4발과 ‘마린 마커’ 1발을 투하했다.

능동 소노부이는 바다 위에 부표처럼 띄워 음파를 내 수중접촉물을 탐지하는 휴대용 소나(SONAR·음파탐지기)다. 마린 마커는 불꽃과 연기를 내뿜으며 적 잠수함이 있을 만한 위치를 표시해주는 일종의 섬광탄이다.

16일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항해 중인 세종대왕함과 비행 중인 P-3해상초계기. [사진제공=해군]

작전을 지휘 중이던 세종대왕함의 김성필 함장은 이번에는 링스 헬기 긴급출격을 지시했다.

링스 헬기는 초계기가 알려준 지점으로 날아가 ‘디핑 소나’를 투하해 적 잠수함 위치를 확인했다. 디핑 소나는 해상작전헬기가 공중에서 줄에 매달아 깊이를 바꿔가며 적 잠수함을 찾아내는 ‘잠수함 청진기’ 격인 장비다.

이때, 세종대왕함은 어뢰 추진기로 판단되는 수중 소음을 탐지하고 즉시 어뢰 기만기를 발사하며 전속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얕은 깊이로 설정된 폭뢰를 투하하는 모의훈련으로 적의 어뢰에 대응했다.

이와 동시에 링스 헬기와 세종대왕함에서 경어뢰 ‘청상어’와 대잠유도무기 ‘홍상어’를 모의 발사해 적 잠수함을 격침하며 훈련을 매조졌다.

16일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링스 해상작전헬기가 ‘바다 속 청진기’ 격인 ‘디핑 소나’를 투하하고 있다. [사진제공=해군]

진화하는 한국형 해상 3축체계

한국 해군 이지스함 1번함인 세종대왕함은 탐지거리가 최대 1000km에 이르는 스파이-1D 레이더를 갖추고 있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해상에서 가장 먼저 포착할 수 있다. 한국 영해 어디서든 북한 전역에서 일어나는 공중 활동과 도발 징후를 실시간 탐지할 수 있는 한국형 해상 3축체계의 핵심 자산인 셈이다.

이 함정은 1000여 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 추적하고 20여 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 해군의 최강 수상 전력이다.

이와 함께 해군은 SLBM 발사가 가능한 3000t급 잠수함을 확충하며 은밀한 대북 응징·보복 수단을 갖춰나가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 신형 이지스함인 ‘정조대왕함’이 전력화되면 해상에서 북측 탄도미사일을 탐지, 요격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게 된다.

훈련을 주관한 김성필 함장은 진해 해군기지로 귀환하는 세종대왕함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세종대왕함은 적의 다양한 위협에 대비해 실전과 같은 강도 높은 교육, 훈련으로 최상의 전투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함장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이 도발하면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6일 부산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 진행된 해군 대잠수함전 훈련에 참여한 링스 해상작전헬기가 세종대왕함 비행갑판에 착륙하고 있다. [사진제공=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