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I] '형편없이 졌어요'
(MHN스포츠 이솔 기자) 78분,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젠지가 잘했다' 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뻔하고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지난 17일 오후 9시(한국시간), 영국 코퍼 박스 아레나에서 펼쳐진 2023 MSI 패자조 2R에서는 젠지가 78분이라는 경기시간 끝에 C9에게 3-0 압승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젠지가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줄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젠지가 특별한 무언가를 선보이며 C9을 압살했다.
- 밴픽
C9이라는 몇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하면서조차 젠지는 방심하지 않았다. 무난한 밴픽으로 흐른다면 이기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반적으로 좋은' 챔피언들을 고루 밴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1세트에서는 라칸-크산테-애니 / 사일러스-리신, 2세트에서는 애니-노틸러스-마오카이 / 뽀삐-케넨, 3세트에서는 애니-노틸러스-마오카이/ 니달리-르블랑 등을 잘라냈다. 직전 세트에 상대가 좋은 플레이를 선보인 챔피언들이 포함된 '무난한 밴'이었다.
문제는 C9도 비슷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목에 칼이 들어온 3세트까지 C9은 바이-룰루-오공 / 사이온-(말파이트) 등 말파이트를 제외하고 평이한 밴을 선보였다.
이날 눈에 띈 C9의 챔피언 조합은 2세트의 카직스-르블랑 단 하나. 이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다를 게 없었다. LCK 팀들이 상대하던 친구들 그대로였다. 당연히 어떻게 대처하는지, 조합의 맹점이 뭔지는 눈 감고도 파악할 정도였다.
전날 BLG와 상대한 G2는 달랐다. 1세트에는 야라가스+징크스-블리츠크랭크라는 괴상한 조합을 선택하며 BLG가 (스크림 말고 대회에서는) 쉽게 겪어보지 못한 챔피언들을 내세웠다.
2세트에는 아예 잔나라는, LPL에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챔피언이 등장해 아리(야가오)의 치맛자락을 들췄다. 3세트에는 다리우스가, 4세트에는 전 iG의 기드온이 활용하던 그라가스 정글을 선택한 점도 눈여겨볼 점이었다.
- 인게임 플레이
너무나도 무난했다. 물론 피넛의 칼날을 피해가기는 어려웠으나, 처절한 시도 끝에 쓰러지는것과 가만히 서서 죽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실제 연습과정과 선수들의 사정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제 3자가 보기엔 C9은 후자에 가까웠다.
구체적으로 C9은 1세트에서 시종일관 그랩-사망, 2세트에서 얻어맞기-(반격)-실패 등 내용 없는 패배를 거뒀다. 유의미한 시도가 있었던 3세트가 위안거리였으나, 젠지가 빡빡하게 경기를 운영하지 않은 탓이 컸다.
'그럼 어떻게 해'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간단하다. 밴픽단계부터 컨셉 잡힌 조합(카밀-렉사이-카시오페아, 제이스-리신-르블랑/조이-카르마) 등으로 어떤 시도라도, 재미라도 선사하거나, 샨지의 변칙을 필두로 한 OMG(LPL)처럼 인게임 플레이에서 독창적인 무언가라도 보여줬으면 했다.
과거 퐁 부 버팔로를 기억하는 팬들이 있을까?
VCS(베트남)팀 퐁 부 버팔로(현 사이공 버팔로)는 '눈만 마주치면 싸운다'는 소리가 나올,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공격력으로 당대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던 LEC의 G2를 2개대회 연속(2018 롤드컵, 2019 MSI)으로 잡아냈다. 이를 통해 '공격성'이라는 베트남 리그의 색채를 정립했으며 전 세계에 VCS의 매운맛을 각인시킨 바 있다.
그 정도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LCS에는 '맨날 지는 리그'라는 밈 요소를 제외하면 리그를 상징하는 색깔도, 이렇다할 구체적인 전략도 없다. 지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보여준 과거 퐁 부, 그리고 라이벌 지역인 LEC의 G2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시종일관 얻어맞다 쓰러지는 패배였다. 이젠 소용 없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리그오브레전드의 발상지로 핫샷의 CLG NA 시절부터 전 세계 팬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안겼던 LCS. 그러나 소유주들마저 엑시트를 원하는 현 상황에서 이와 같은 성적과 경기력으로는 엑시트 대신 리그 및 구단의 규모와 흥행만 점점 줄어드는 'LCS판 브렉시트'만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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