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현의 간절함이 만든 기적, 절망의 끝에서 그들을 살린 건('나쁜 엄마')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게 뭐냐고 이게. 겨우 몇 미터 차이로 어떤 것은 죽고 어떤 것은 살고."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구제역이 돌아 강호네 돼지농장 돼지들이 살처분 당한 일을 보고는 이웃인 미주엄마 정씨(강말금)는 그렇게 한탄한다. 염소농장 때문에 구제역이 돌았지만, 강호네 돼지들은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구제역이 생겨난 곳에서 3km 이내의 소, 돼지들은 살처분 되게 됐다. 그게 법이란다.
선 하나를 그어놓고 어떤 것은 죽고 어떤 것은 사는 이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도시와 지역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로, 권력자와 약자로, 거대한 강과 개천으로 어떤 선 하나가 그어져 있고, 그 선을 중심으로 어떤 건 잘 살지만 어떤 건 갈수록 살아가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그것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 그런 세상.
오태수(정웅인) 같은 정치인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 요즘처럼 사회적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부와 빈곤이 세습되는 세상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약자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노력도 발전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 겁니다."
하지만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강호(이도현)가 그의 딸 하영(홍비라)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왔을 때 그는 강호에게 딸에게서 떨어지라며 이렇게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너한테선 이상한 냄새가 나.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랬어. 그게 뭘까. 개천에서 난 용이라 흙 비린내가 나는 건가?" 그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그런 세상의 희망 따위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딸을 재벌가와 결혼시키려 하고, 자신은 희망 운운하는 거짓말을 앞세워 대통령이 되려 한다.
<나쁜 엄마>에 등장하는 돼지는 어찌 보면 우리네 착한 서민들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더럽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사실은 깨끗하고, 오히려 그들을 더럽게 만든 건 이들을 좁은 우리에 가둔 자들이다. 모든 걸 다 내주는 버릴 게 없는 착한 존재지만, 구제역이 돌면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법에 의해 살처분 되는 가엾은 존재. 돼지의 존재가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저들의 잣대에 의해 매겨지고, 그래서 때론 그럴 이유도 없는데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런 존재다.
강호의 아버지이자 영순(라미란)의 남편은 외지에서 들어온 자들이 마음껏 그어놓은 선 바깥으로 밀려나 죽음으로 내몰린다. 영순은 절망하지만 그때 그가 좌절하지 않았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 돌봐야할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강호를 힘 있는 자로 만들어야 했고, 밥 달라고 조르는 돼지들을 키워야 했다. 하지만 영순은 또다시 절망 앞에 서게 됐다. 자신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기르던 돼지들도 모두 살처분 됐다.
영순은 모든 걸 정리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요양원에 맡겨졌던 강호가 그 먼 길을 휠체어를 끌고 돌아와 이제 막 죽음 앞에 버둥대던 영순을 안고 벌떡 일어선다.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 이 끝으로 내몰린 이들을 살리는 건 결국 무너져 가는 서로를 지탱하려는 그 마음이다.
과연 절망의 끝에서 자식마저 버리고 떠나려는 이 나쁜 엄마를 강호는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마치 저들의 말처럼 '사회적 약자'를 상징하는 듯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는 강호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를 지탱하는 그 기적 같은 모습은 이 끝에서 또다시 희망을 바라보게 한다. 개천에서 났다고 아무렇게나 처분돼도 좋은 그런 존재는 없다고 이 모자가 아니 이 조우리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외치기를 기대하게 한다. 과연 이 변두리 마을 사람들은 비정한 세상과 맞서 따뜻한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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