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국가 부흥의 토대 제대로 세울 때다
경험에서 배우는 베이즈 법칙
독선적 사람에게는 소용없어
미래 대비할 데이터가 더 중요
온고지신은 배우려는 겸손함
매년 1%P 하락한 잠재성장률
표 때문에 미래 허물지 말아야
통계학에서 단 하나의 유용한 법칙을 꼽으라면 단연 베이즈 법칙이다. ‘수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영국의 성직자 토머스 베이즈(1702∼1761)에 의해 탄생한 이 법칙은 경험적 자료에 담긴 정보를 처리해 기존 관점을 바로잡는 알고리즘이다.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통해 베이즈 법칙을 알아보자. 우화 속에서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으니 도와 달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왔으나 늑대는 없었다. 두 번 반복된 장난의 결과, 마을 사람들은 더는 소년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애초에 마을 사람들은 소년이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을 게다. 하지만 두 번씩이나 허탕 치고 나서는 소년의 됨됨이를 평가절하하기에 이르렀다. 해서 도와달라는 소년의 세 번째 외침은 무시되고 말았다.
베이즈 법칙은 자료로부터 배우는 방식을 알려준다. 이때 배우려는 사람이 독선적이면 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주관적 독선이 객관적 자료를 지배하면 베이즈 법칙은 설 자리를 잃는다. 기존의 관점은 바뀌지 않고 지적 성장은 멈추게 된다. 베이즈 법칙은 흑백논리의 부정, 독선의 배제, 사고의 연속성,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경험의 가치를 알려준다.
시대 변화가 빚어내는 데이터를 가장 무시하는 집단이 우리 정치권 아닐까. 누가 집권하든 고집이 지나치고 자료 처리는 제멋대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정치에는 감동이 없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은 나날이 늘고 있다. 적폐청산(積弊淸算)이란 오랫동안 쌓인 폐단(弊端)을 씻어 버린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이 말은 시간적으로는 과거를, 공간적으로는 타아(他我)를 부정하는 적개심의 발로다.
현 정부나 이전 정부를 가리지 않고 늘 새로운 게 최상이라는 듯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루하루 처리할 데이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이전 정권 부정하기로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과거 모든 게 적폐청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국가통계만 하더라도 그 생산과 해석, 해석의 재해석은 있었을지언정 과연 통계청에 의한 통계 조작이 있었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20세기 들어 민주화와 산업화 양 측면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보건대 어찌 후회가 없겠는가. 이전의 선택 하나하나를 들춰 비난의 대상으로 삼거나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 역사는 더 빠르게 발전해 나갈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반목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하나라도 배우고자 하는 실용적 자세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앎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기 산의 옥돌을 가는 데 긴요하게 쓰일 수 있음을 말한다. 본이 되지 않는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교훈이다. 온고지신이나 타산지석은 역사로부터든 남에게서든 뭔가 배우려는 겸손함이지, 시간을 부정하거나 타아를 비난하는 오만함이 아니다.
지난 30년 이상, 5년 단임의 정권들은 단기간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고 했다. 단기적인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하나같이 미래에 주름살이 지게 했다. 세우기가 어려우니 부수기를 선택했다. 거의 예외 없이 지난 정권 지우기에 몰두했다. 2023년 오늘 우리 경제는 저출산, 고령화, 파괴적 기술 혁신, 세계 경제 체제의 재편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집권층은 현재 좋아 보이는 인기 영합적인 정책만 선택해서는 안 된다. 당장 눈앞의 표(票)로 이어지더라도 우리 후손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더더욱 추진해서는 안 된다. 사실 5년 단임의 정권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동하라고 요구하기는 무리다.
그런 점에서 더 늦기 전에 헌법 개정이든 뭐든 필요한 대로 고쳐 정부의 연속성이 보장되도록 무언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때 고도의 성장을 이루던 우리 경제는 지난 30년간 잠재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계속 내려가는 이른바 ‘김세직 법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국가 부흥의 토대를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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