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Why? 사람들은 왜 화장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상을 만질까?

청주방송 2023. 5. 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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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 (풍화 프로젝트: 레진), 2023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전경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오늘은 비누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난 3년간 비누는?

위생 필수품이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유행에서 비누로 30초 이상 손을 닦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 시대였다.

200여 년 전 유럽에서 비누는?

인류 구원의 발명품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목욕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전염병과 피부병에 시달렸고, 평균 수명은 40세 미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790년, 프랑스 출신 화학자 니콜라스 르블랑(Nicolás Leblanc) 공법으로 비누 보급이 확대되고, 이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최소 20년 늘렸다. 우리나라에 본격 유입된 시기는 개화기 이후. 당시 비누의 순우리말인 '비노'가 있었기에, 유입될 때는 '양비누'라 불렸다.

신미경, (시간/물질: 생동하는 뮤지엄), 2023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전경


조각가 신미경

조각가 신미경에게 비누는?

특별한 재료다. 충북 출신인 그는 지난 30년간,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현대미술가다.  비누로 서양의 고전 조각상, 동양의 도자기 등 동서양의 문화유산을 조각해왔다. 어느 날, 작가는 우연히 학교 화장실에서 분홍색 비누를 봤고, 마치 그것이 핑크 대리석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1996년부터 시작된 그의 비누 작업은 올해로 26년 차.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미국 휴스턴 미술관, 영국예술위원회, 영국 브리스톨 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작가에게 비누는 우연에서 필연으로 이어진 재료다.

신미경, (트렌스레이션-그리스 조각상), 1998 비누, 178(h) x 65 x 41cm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전경

전시에는 총 120여 점에 가까운 작품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인 70점은 라지 페인팅 프로젝트(2023), 낭만주의 조각 시리즈(2023) 등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이다. 메인 전시인 라지 페인팅 프로젝트(2023)는 작가가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페인팅 시리즈>의 확장판이라고 한다. 회화처럼 보이지만 조각이다. 조각 비누의 향은 후각을 자극한다. 한마디로 '추상화가 담긴 대형 평면 비누 조각'이다.

신미경, (라지 페인팅 시리즈), 2023 총 5점/ 비누, 프레임, 향, 안료, 각 200(h) x 160 x 5cm,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전경

이를 제작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캔버스 150호 정도 되는 대형 철제 틀을 만든다. 비누는 0.1톤이 넘는 양을 녹인다. 여기에 색, 향을 가미하고, 틀 안에 부어 굳힌다. 이후 표면을 다듬고 토치(불)로 색을 조정한다. 총 무게는 200kg 이상. 작품에는 작가의 땀과 노동, 시간이 담겨 있다.

신미경 (작업하는 모습)

그렇다면, 작가 신미경은 오랜 시간 비누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한 인터뷰를 통해 이유를 짐작해본다. 작가는 일상의 존재물이 실제로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비누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속성, 향기 등 비누가 가진 물질성에 주목한 거다. 비누의 익숙함도 언급했다. 익숙한 비누가 주는 친근함이 관객들에게 작품의 첫 문턱을 낮춰준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20년 이상의 세월을 견딘 자신의 조각에서 ‘시간성’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시각미술인 조각은 시간성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비누는 응축된 시간성을 잘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대체 불가능성이 그 이유였다.

신미경, (낭만주의 조각 시리즈), 2023 총 11점/ 비누, 안료, 가변크기, 코리아나미술관 전시 전경

시간성 작업에 대한 이런 일화가 있다. 잠시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영국으로 가보자. 어느 평범한 날, 작가 신미경은 런던 캐번디시 광장의 빈 좌대를 보며, 좌대 위가 비어있는 이유가 궁금했다고 한다. 좌대는 조각상 같은 기물을 올려놓는 일종의 대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라진 조각상을 비누로 정교하게 만들어 그곳에 올리고 싶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마치 대리석으로 느끼도록 말이다. 그렇게 좌대에 오른 비누 조각상은 처음엔 새로운 조각이지만, 비누의 속성상 빨리 풍화가 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마치 고속으로 돌아간 것처럼 볼 수 있게 되는 작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누로 쓰다 : 좌대 프로젝트(2012)>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작가는 오랜 시간 좌대에 있어야 했을 고전 기마상의 생김새, 의미를 추적했고, 비누로 복제했다고 한다. 런던과 시의 허락을 받는 것도 큰일이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작가는 오랜 집념으로 밀어붙인 끝에 4년 만에 비누로 재현한 기마상을 좌대에 세우게 되었다.

신미경, (화장실 프로젝트), 2023 총 4점/ 비누 코리아나미술관 화장실 설치 전경

이런 작가의 작업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전시의 백미 아닐까. <화장실 프로젝트(2023)>는 화장실에 비치된 비누 조각상을 사용해 손을 씻으며 조각을 닳게 하는 체험이다.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상,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상 등이 전시관 지하 1층, 지상 5층의 남녀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다. 관객들의 참여로,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되는 작업이다. <풍화 프로젝트(2023)>는 비누 조각상을 전시 건물의 중정(야외)에 설치했다. 지금도 마리 앙투아네트상은 비, 바람 등으로 인해 풍화가 진행 중이다.

신미경, (풍화 프로젝트), 2023 1점/ 비누, 65(h) x 34 x 24cm 코리아나미술관 중정 설치전경


신미경, (화장실 프로젝트), 2022-2023 총 6점/ 비누, 가변크기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전시 전경

그런가 하면, 박물관의 유물처럼 시간이 멈추면서 가치가 새로워진 조각들도 있다. <화장실 프로젝트(2022-2023)> 비누 조각 6점인데, 과거에는 정교하게 재현된 조각상이었다. 5개월간 국내 한 백화점 화장실에 비치되어 있던 조각들은 이곳에서 사람들의 비누로 이용되며 변형되었다. 지금은 머리가 매끈한 타원형이다. 변형된 비누 조각상에 브론즈(청동)를 캐스팅한 신작<풍화프로젝트 : 브론즈(2023)>도 눈길을 끈다. 긴 여정을 끝내고, 진정한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다. 이렇듯 본래 쓰임이 멈춘 비누 조각들은 유리 진열장 속 유물처럼 전시되고 있었다.

"나에게 시간이란 ‘생물’이다.“
"나에게 시간이란 ‘기억’이다.“
”나에게 시간이란 ‘행복한 순간’이다.“

관객들이 조작가 신미경의 비누 조각을 감상한 뒤 남긴 기록이다.
전시를 본 당신은 시간 혹은 시간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전시(시간/물질 : 생동하는 뮤지엄 신미경)는 오는 6월 10일까지. 코리아나미술관│SPACE*C

(사진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 촬영 아인아)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청주방송, TBN충북교통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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