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후 저는 죽는다” 절규한 피해자, 법원은 왜 청바지에 주목했나
검찰 DNA 분석 결과 나온 후 성폭행 혐의 등 추가 기소 가능성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귀가하던 여성을 뒤쫓아가 무차별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살인미수에 더해 성범죄 혐의도 추가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시 착용하고 있던 청바지가 강제력 없이 벗기 어려운 구조라고 판단했다.
18일 법원에 따르면, 부산고법 형사 2-1부(최환 부장판사)는 전날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 네 번째 공판에서 피해자가 사건 당시 입었던 청바지에 대한 검증을 진행했다.
피해자의 청바지는 유전자 감식을 위해 대검찰청에 있었는데, 재판부가 옷 형태와 구조를 포함해 입고 벗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 위한 검증에 돌입하면서 법원으로 반환됐다.
청바지 검증이 진행된 공판에는 피해자도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는 검찰과 A씨 변호인,피해자와 피해자 변호인 등과 함께 청바지를 검증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입고 있던 청바지는 다리를 넣고 지퍼를 올린 다음 끈을 왼쪽으로 젖힌 뒤 금속 재질의 단추 2개로 잠그는 방식이다.
피해자는 "허리가 가늘어서 허리에 딱 맞는 바지를 샀다"며 "이 바지는 밑위가 굉장히 길다. 배꼽을 가릴 정도"라고 설명했다. 신체에 딱 맞는 사이즈인데다, 밑위가 길고 착장 방식이 일반적인 청바지와는 달라 일부러 벗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한 그냥 내려갈 수는 없다는 취지다.
최 부장판사는 30분 가량 진행된 청바지 검증 전반을 유심히 지켜봤다. 검증이 끝난 후 최 부장판사는 "저절로 풀릴 수 없는 구조"라고 결론 짓고, "검증 조서에 기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 A씨는 검증을 앞두고 사건 당시 청바지에 대한 내용을 묻자 "사진으로만 봤고, 사건 당시 청바지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재판부 검증 내내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앞서 세 번째 공판에서는 사건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이 법정에 나와 "피해자의 바지 지퍼가 절반 이상 내려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피해자 측은 청바지 특성 상 저절로 내려갈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검증을 통해 이를 인정하면서 성범죄 혐의로 추가 기소될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피해자 변호인은 재판 직후 "재판부가 청바지에 큰 관심을 표현했다"며 "청바지 자체가 최소한의 범죄 동기와 그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정신을 잃고 기억이 없었다"며 "다음 기일에 DNA 감정 결과가 오면 성범죄의 직접적인 증거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검찰은 최근 A씨가 구치소에 수감된 동료에게 '출소하면 피해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보복성 발언을 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양형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이달 31일 오후 5시로 정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당일에 변론을 종결하기로 했다.
A씨는 지난해 5월22일 오전 5시께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10여 분간 쫓아간 뒤 부산진구의 한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CCTV에는 A씨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피해자를 발견한 뒤 보폭을 줄이며 몰래 뒤로 다가갔고, 갑자기 피해자 머리를 뒤에서 발로 돌려차는 등 무차별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후 A씨는 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피해자를 끌고 갔고, 약 7분 뒤 홀로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살인미수 혐의로만 기소된 A씨는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피해자는 1심 선고 뒤인 지난해 1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가해자 출소 이후 보복을 우려했다. 피해자는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범인이 폭행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8년이나 형을 줄여 12년을 선고했다"며 "범인이 12년 뒤 다시 나오면 고작 40대인데, 숨이 턱턱 조여 온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측은 사건 직후에는 폭행으로 인한 피해 회복에 집중했고, 기억상실 장애까지 앓아 가해자의 모든 범죄 정황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이후 청바지 등을 근거로 성범죄가 있었다고 판단해 추가 기소와 신상공개 및 엄벌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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