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남은 전경련 회장 대행 체제… 차기는 정의선?
김승연·조현준 회장도 후보 거론
‘6개월 임시 선장’을 자처한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의 임기가 100일 정도 남은 가운데, 차기 회장직을 누가 맡을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경련은 최근 일본과 미국 정상회담의 경제사절단을 연달아 성공적으로 주관하면서 위상을 되찾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월 23일 취임한 김 대행의 임기는 8월 23일까지다. 김 대행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이 탈퇴하고 12년간 전경련 회장을 맡은 허창수 GS그룹 회장 이후 전경련을 맡겠다는 총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경련 회장직이 ‘재계의 대표’에서 ‘계륵 감투’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전경련은 4대 그룹의 재가입과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해, 4대 그룹과 실무선에서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전경련은 4대 그룹 복귀를 위해 ‘투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외 활동 강화를 통해 4대 그룹과 접점을 늘려가면서, 자체적으로 혁신안을 마련해 4대 그룹이 재가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 정의선 현대차 회장, 차기 전경련 회장說
현재 재계에서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인물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최근 전경련이 주최하는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행사에 1호 총수로 참석하기로 했다.
정 회장이 전경련 단독으로 주최하는 공식 행사에 참여한 것은 2017년 2월 현대차그룹이 전경련에서 공식 탈퇴한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정 회장이 전경련이 주관한 경제사절단에는 참여했지만, 이는 전경련 행사라기보다는 대통령과 경제계 전체의 행사 성격이 짙었다.
1970년생인 정 회장은 젊은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 중심이던 현대차·기아의 체질을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로 바꾸고 있으며,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던 현대차그룹 조직문화에 수평적인 분위기를 이식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경련이 기업의 이익을 객관적으로 대변해야 한다는 점도 정 회장이 필요한 이유다. 반도체(삼성, LG), 배터리(삼성·SK온·LG) 분야의 경우, 이미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어느 한 기업이 전경련 회장을 맡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국내에 뚜렷한 경쟁 기업이 없고 반도체나 배터리 분야와도 관계가 있어, 전체 기업의 입장을 중립적으로 대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성품이나 회사의 규모 등을 감안하면 전경련 회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다만 정몽구 선대회장 시절부터 양궁협회를 제외하고 외부 경제단체의 직함을 달지 않았던 가풍이 있어 정 회장이 전경련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재계 순위 1위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은 전경련 회장 취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평가다. 이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작년 8·15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부정회계·부당합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수감 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국정농단 사태 및 전경련과 관련이 있고 2016년에 쇄신을 약속하며 전경련을 떠났기에 이를 뒤집을 명분이 약하다.
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SK는 현재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어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기 쉽지 않다. 다만 한때 재계에선 최 회장이 전경련 회장도 함께 맡는 방안도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LG는 1998년 반도체 사업을 정부의 빅딜 정책으로 넘겨줄 당시 이 과정을 전경련이 주도했기 때문에 서먹한 사이가 됐다. 고 구본무 회장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경련 행사에 가지 않았고 구광모 회장도 선대회장의 뜻을 번복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다크호스 김승연·조현준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도 차기 전경련 회장 후보로 꼽힌다. 김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로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했음에도 꾸준히 부회장단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회장단은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김 회장은 그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사람 손들라”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질문에 손을 들기도 했다. 그만큼 전경련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한화그룹이 최근 방산 사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기에 자격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조현준 효성 그룹 회장의 전경련 회장설도 나오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 2월 정기총회에서 전경련 신임 부회장단으로 선임됐다.
조 회장의 강점은 총수들과의 친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1968년생 동갑내기 친구이며, 경기초와 일본 게이오대학 석사 과정을 함께 마쳤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이들 총수 3명은 지난 3월 신기업정신협의회가 주관한 사회공헌활동을 위해 울산소방서를 함께 찾았다.
조 회장의 부친인 조석래 명예회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당시 조 회장은 신뢰 받는 전경련을 만들기 위해서는 ‘5대그룹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5대 그룹의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직에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에서 총수들과의 소통이 가능하고 420여개 회원사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조 회장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은 4대 그룹의 재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전경련은 과거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전경련을 담당했던 김완표 삼성경제연구소 상생연구담당(사장)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기업들도 대관 등 실무진을 중심으로 전경련 재가입 협의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김 회장(직무대행)이 지금까지도 6개월만 근무한 뒤 전경련을 혁신하고 나가겠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며 “현재 혁신안 작성이 마무리 단계이다. 전경련이 혁신안을 실천하면 기업이 재가입할 명분은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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