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죽지도 못헌 내 새끼…주검 찾아 며느리와 합장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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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울 아들이 '엄니, 배고프요' 하드라고. 그래서 내가 '(돌아가신) 할아부지, 할무니가 니 밥 안 줬어? 언능 할무니한테 가서 밥 달라 그래라잉' 하고 막 울었어."
"우리 딸이 마지막 제사 때 그랬어. '오빠, 인자 집으로 오지 말고 절에 가서 밥 먹소'라고." 김씨는 매년 백중 때면 도양읍의 한 사찰을 찾아가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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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나타난 울 아들이 ‘엄니, 배고프요’ 하드라고. 그래서 내가 ‘(돌아가신) 할아부지, 할무니가 니 밥 안 줬어? 언능 할무니한테 가서 밥 달라 그래라잉’ 하고 막 울었어.”
어버이날인 8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집에서 만난 김진덕(78)씨는 오래전 꿈 이야기를 하면서 “아들이 살았으면, 올해가 환갑”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 5·18 때 행방불명된 아들의 제사를 5년 전까지 지냈다. “우리 딸이 마지막 제사 때 그랬어. ‘오빠, 인자 집으로 오지 말고 절에 가서 밥 먹소’라고.” 김씨는 매년 백중 때면 도양읍의 한 사찰을 찾아가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다.
아들 임옥환(당시 17)군은 중학교 때 1·2등을 다퉜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임군은 조선대 옆 불광사가 운영하던 하숙방에서 생활하면서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인장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새벽이면 신문 배달을 하던 효자였다. 김씨는 “언젠가 광주 아들 하숙방에 가서 이불 빨래를 해주고 하루 자고 왔는데, ‘엄마 이불 냄새가 좋다’고 하던 말이 안 잊힌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계엄군 집단발포(5월21일) 이튿날인 5월22일 임군은 대학생 2명, 공고 3학년생 등 하숙집 지인 3명과 함께 ‘피란길’에 나섰다. 광주 ‘난리’를 피해 걸어서라도 고향 고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선대 인근 지원동 뒷산에서 갑자기 계엄군들이 나타나 ‘암구호’를 대라고 했다.
임군 등 4명은 “흩어지자”며 뛰어 도망쳤다. 공고생 문군은 현장에서 군인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고 군부대로 끌려갔다. 하지만 임군은 그날 사라졌다. 임군 부모가 광주로 올라가 도청과 조선대 뒷산 등지를 헤매고 다녔지만,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김씨는 “그해 6월 지원동에 갔다가 가마니로 덮인 주검 11구를 일일이 확인했다. 그때 냄새가 몸에 배어 한달간 밥을 못 먹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5월에 높은 계급의 군인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부하 한명이 학생 한명을 쏴 죽였는데, 검은 옷(교복)을 입었더라’고 했다”는 지원동 주민의 말을 전해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한다.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아들이 가지고 나갔던 책가방만 돌아왔다. 임군은 그해 6월30일 학교에서 제적됐다.
아버지 임준배(89)씨는 초대 ‘5·18 행방불명자 가족회’ 회장을 맡아 5·18 진상규명에 앞장섰다. 광주시에 행방불명자 신고를 하면서 아들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문군을 수소문했다. 문군은 “지원동 뒷산 현장에서 총소리가 두차례 들렸다”고 친필로 현장 상황을 적어줬다. 이 증언은 1989년 임군이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버지 임씨는 17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을 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1990년 한 사찰에서 아들의 영혼결혼식을 올려줬다. 사위가 알던 지인의 여동생이 병환으로 세상을 떴다는 말을 듣고 넋으로라도 부부의 연을 맺어주고 싶었다. 김씨는 “아들 묘가 없으니, 합장을 못 하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국립5·18민주묘지 행불자 묘역엔 ‘임옥환의 령’이라고 적힌 비석만 서 있다. 5·18 이후 주검을 찾지 못한 행불자는 모두 76명이다.
“녹동에서 반나절 광주에 가 닿으면/망월동에서 또 반나절/네 이름 석자 쓰다듬으러 왔다.//아무도 주검을 못 보았으니/ 제대로 죽지도 못헌 내 새끼/ 네 아부진 또 멀찍이 서서/ 저렇듯 속울음만 삼키는구나”(고영서 시인의 ‘김진덕 여사의 오월’ 중에서)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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