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선 건조 '최적 타이밍'…유럽 물동량 대폭 늘려 만반의 준비 [유창근의 육필 회고]

2023. 5. 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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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운강국의 길
유창근 전 HMM 대표 육필 회고 (7)
초대형선 건조를 앞두고 우선 1만1000TEU급 2척을 인수, 초대형선 운영의 물꼬를 텄다. 사진은 2018년 7월5일 HMM 프로미스호 출항식 장면. / 사진=HMM 제공


2만4000TEU 선박을 결정할 당시 극동-유럽 항로에서의 현대상선 영업 역량은 극동-북유럽 기준 주당 6000TEU 정도로 시장점유율 2.5% 수준이었다. 영업 역량이 주당 6000TEU 정도의 회사가 2만4000TEU 선박을 건조하겠다는 계획은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공적 자금 투입 운운하며 비난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나와 실무진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2000~2001년 본사에서 미국·유럽 마케팅 담당 중역을 역임했고 2002~2006년 런던에 주재하며 유럽본부장으로 유럽 영업을 주도했던 경험이 있다. 그 같은 경험에 비춰봤을 때 실적으로 나타난 현대상선의 집하 능력은 얼라이언스 내의선복 분배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수치로, 현대상선의 잠재 영업력은 적어도 1만2000TEU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유럽 시장점유율 2.5%는 미주 7%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수익률을 감안해 미주에 선복을 많이 할당하고 유럽은 억제한 결과였다. 2020년 경쟁력 있는 선박으로 무장할 현대상선에 있어 2020년까지 2년간 과제 중의 하나는 영업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1년에 4000TEU씩 늘려 초대형선 투입 시점인 2020년에는 주당 1만4000TEU 정도 집하를 목표로 잡았다.

그렇다면 2만4000TEU 선박은 너무 큰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2만4000TEU라는 수치는 화물 무게를 감안하지 않고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의 총량인 공칭선적 능력(declared capacity)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극동-유럽 항로의 헤드홀(head-haul·수출화물 운송)인 서향(west-bound) 화물의 평균 중량을 감안한 실질 선적능력(loadable capacity)으로는 2만TEU 정도로 볼 수 있다.

2020년 집하 능력이 1만4000TEU로 신장할 경우를 가정해 초기에는 협력사에 5000~60000TEU를 매각하고 장기적으로 매각 규모를 줄여나가 투입 초기부터 세계 최대 규모 초대형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동시에 장래 확장성에 대비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1차년도인 2018년에는 2M과의 협력 범위(scope)와 별개로 현대상선이 독자적으로 4500~5000TEU 선박 11척을 용선, 집하 실적을 주당 1만TEU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최악의 경우 얼라이언스 협력 없이 독자 운항을 하더라도 초기 선박 투입시 1만5000TEU 이상으로 영업력을 끌어올리면 초대형선의 경쟁력에 힘입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영업력 증대에 집중하는 한편으로 초대형선 발주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는 2017년부터 조선 경기가 악화돼 조선 3사 수주량이 감소하는 국면이었다. 현대상선으로선 선가가 내려가 발주하기 좋은 시점이었고, 초대형선 20척을 발주하면 조선 3사에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2만4000TEU급 선박은 수에즈 운하 통과를 전제로 그간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최대 모델로 했다. 극동-유럽 항로 투입 숫자를 11척으로 할 것인지, 12척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내부 논의를 거쳐 12척으로 결정했다. 머스크나 MSC의 대형선 운영 형태를 파트너로서 지켜볼 수 있었던 덕분에 그들이 12척으로 선단을 꾸미는 이유를 협력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선박이 대형화됨에 따라 빈번하게 발생하는 수에즈 운하 통과시 지연, 여름 독일 엘베강 저수위 문제 등이 상존하는 게 포인트였다. 선박 지연시 이를 만회하기 위한 운항상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며 더욱이 현대상선의 경우 2만4000TEU급 선단이 1개 항로밖에 없어 대체 선박을 구하는 게 불가능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나 항만 파업 등으로 인한 공급망 측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나 비용 문제로 수에즈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오는 경우 운항상 12척은 반드시 확보해야 할 조건이었다.

1만5000TEU급 선박 8척은 파나마 운하 확장 이후 통과할 수 있는 최대 모델을 채택했다. 향후 상황에 따라 이미 운항 중인 1만3000TEU급 10척, 1만1000TEU급 2척과 조합해 신축적으로 선단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G6 얼라이언스 시절 현대상선은 극동-미주동안 구간 선박투입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2M과 협력시에는 2M의 견제로 현대상선의 영업 능력에 비해 낮은 시장 점유율에 그치고 있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확장성이 있는 곳이었고 언젠가 이 항로에 선박을 투입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 해운강국의 길 - 유창근 전 HMM 대표 육필 회고] 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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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해운 위상…'재도약'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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