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상상력보다 현실이 더 역겨워” 美 발칵 뒤집은 문학스타 고백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5. 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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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2만8000원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삶은 아름다운 음표로 가득한 성대한 악보와 같다.

서른 권도 넘게 발표된 그의 소설은 발표 때마다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부커상 등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다 받았다. 5년 전 그가 사망만 하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 금빛 메달 속 뮤즈가 그의 이름을 호명했으리란 예측은 과장이 아니다.

미국 현대소설의 전설 필립 로스의 사후 5주기를 맞아 ‘왜 쓰는가?’가 출간됐다. [매경DB]
하지만 필립 로스가 살아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기는 온종일 혼자 타자기만 쳐다보고 있었노라고. 그건 매우 지루한 일이어서 자서전같은 건 말도 꺼내고 싶지 않다고. “거의 매일, 온종일, 아침과 오후에 일을하고 그렇게 이삼 년 앉아 있으면 결국 책을 한 권 손에 쥔게 된다”던 그의 말은 작가로서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립 로스 사후 5주기를 맞아 그가 평생 남긴 산문과 인터뷰(그를 인터뷰한 글과 그가 인터뷰한 글)를 묶은 두툼한 책이 출간됐다. 현실과 문학 사이에 선 작가의 긴장, 그리고 세상과의 불화를 내밀한 목소리로 적었다.

필립 로스 신간 ‘왜 쓰는가?’
필립 로스 최고의 문제작 ‘포트노이의 불평’을 회고하며 이 책은 열린다.

1969년 발표된 ‘포트노이의 불평’은 필립 로스를 ‘문학 스타’로 만들어준 최고의 문제작이었다. 유대인 소년 포트노이가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삶을 상담하는 이야기다. 포트노이는 유대인 가정이 엄격하게 여기는 성적 금기를 어기고 수음을 한다. 소설 첫 장부터 음경, 정액, 항문 등 외설적이고 상상도 못할 만큼의 기막힌 묘사가 독자를 흔든다.

유대인 가정의 허위를 고발한 이 소설은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었고 미국 도서관은 금서로까지 지정했으며 해적판까지 나돌았다.

“이 소설은 지저분한 말과 지저분한 장면으로 가득차 있다. 포트노이는 압도적인 강박 속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구원을 바라기 때문에 외설적이다. 나는 사실 작업할 때 소통을 하고 싶은 어떤 집단의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가끔 반(反) 로스 독자는 여두에 둔다. 난 이런 생각을 한다. ‘(저들이) 이걸 얼마나 싫어할까?’”

필립 로스 문제작 ‘포트노이의 불평’. 소년 포트노이가 자신의 수음을 자세하게 정신과 의사에게 고백하는 이야기다. 유대인 사회의 규율과 허위를 다뤘다. 미국 도서관은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소설보다 먼저 간다고 작가는 털어놓는다. 현실은, 소설가가 부러워할 만한 인물을 ‘거의 매일’ 던져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의 미국 작가는 미국 현실의 많은 부분을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고 역겹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빈약한 상상력은 작가를 당혹스럽게 한다. 현실은 우리의 재능을 능가한다.”

현대인 개인의 내면이 사회와 긴장하며 형성됐다는 그의 진단은 ‘미국 3부작’으로 이어졌다. 필립 로스는 1997년작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이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을 차례로 쓰며 미국 현대소설의 전설로 남았다.

사회구조의 허위성을 맹렬하게 고발하는 그의 방식은 장편 ‘미국의 목가’에서 두드러지는데 유대인의 꿈과 미국의 꿈이 만나는 지점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 필립 로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에 도취된 미국의 취기가 베트남전 실패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생생하게 담았다.

“난 사회에서 소설이 다른 누구에게 심각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소설은 다른 방식으로 알 수 없는 세계를 아는 방식이다. 소설을 읽는 건 섹스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마음을 사로잡는 신비한 활동이다.”

총 3부로 나뉜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 일게 되는 부분은 제2부다.

‘주기율표’의 프리모 레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 등 세계의 지성과 대화를 나누며 담긴 기록이 미학적으로 펼쳐진다.

존 베리먼의 문장을 빌려와서는 고통에 대해 사유하기도 한다.

“작가에게 그를 죽이지 않는 시련은 모두 멋진 것이라고 존 베리먼은 말했다. 시련이 마침내 그를 죽였다는 사실도 그가 한 말을 틀린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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