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아닌 ‘웃는 호랑이’ 전략… 중국 외교가 달라졌다[Global Focus]

박준우 기자 2023. 5. 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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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피폐해진 경제 다시 일으키고
美 주도 中고립전략 탈출하기
佛 에어버스 항공기 160대 구매
호주와 무역 정상화 등 논의에
독일과는 항만 지분 참여 합의
부주석 등 유럽 각국서 외교행보
과격 발언 외교관 본국 송환까지
서구사회는 여전히 의심의 눈빛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4월 7일 광저우의 쑹위안에서 차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고 있다. 시 주석이 베이징을 벗어나 광저우까지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이동한 것을 두고 이례적인 의전과 환대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베이징 = 박준우 특파원 jwrepublic@munhwa.com

한동안 미국 등 서구 국가를 향해 과격한 발언을 퍼붓던 중국이 최근 들어 다소 온건한 방향의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선진국들과의 외교에서 강경한 발언을 누그러뜨리고 대규모의 경제 협력을 약속하는 등 ‘채찍’보다는 ‘당근’을 들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피폐해진 중국 경제를 다시 부흥시키고 미국 주도의 중국 고립 정책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자 역할 등을 통해 다른 국가의 신뢰를 얻는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나섰다.

◇돈 보따리 푸는 중국 외교 = 지난 12일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은 돈 파렐 호주 통상장관과 만나 양국 무역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무역, 경제, 외교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수줴팅(束珏정)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은 파렐 장관 방문을 통해 양국 지도자의 발리 회담에서의 중요한 공감대를 이행하고 양국 경제·무역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중국은 12일부터 프랑스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중 때 중국 항공사가 에어버스 항공기 160대를 구매하기로 하는 등 계속된 경제협력 및 투자 확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10일 독일과 함부르크 항만에 대한 자본 지분 참여에 합의하는 등 경제 협력도 이어가고 있다.

경제 협력에 방점을 둔 중국 외교관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한정(韓正) 국가부주석은 6일 영국 찰스 3세 즉위식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신분으로 참석한 뒤 곧이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를 찾았다. 11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난 한 부주석은 “글로벌 산업 공급 체인의 안정”을 강조하며 첨단 반도체 기술의 중국 배제를 견제했다. 왕이(王毅)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중앙정치국 위원은 오스트리아 빈을 찾아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2월 정찰 풍선 사건 이후 경색된 미·중 현안의 돌파구를 모색했고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을 만나 “중국은 유럽과 상호 존중, 호혜 공영의 기초 위에서 대화와 협력을 원한다”며 관계 정상화 의지를 전달했다. 친강(秦剛)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독일과 프랑스, 노르웨이를 찾아 경제적 협력을 강조했고, 오는 7월에는 호주를 찾을 예정이다.

왕이(오른쪽)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및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신화통신

◇과격한 발언에 대한 입단속 = 기존의 강경한 ‘전랑 외교’ 노선도 누그러지고 있다는 평가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국가들의 주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던 루사예(盧沙野) 주프랑스 대사가 조만간 본국으로 소환될 예정이다. 해외의 ‘반중 발언’을 거칠게 비난하며 스타 외교관으로 떠올랐던 자오리젠(趙立堅)도 1월 외교부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한때 전랑 외교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왕 주임과 친 부장도 기존보다 유화적인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시 주석이 약 2년 전 “사랑과 신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외교 정책을 구사하자”며 “국제무대에서 중국을 이해하는 친구를 만들려면 겸손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밝힌 내용이 다시 회자하고 있다.

중국의 변화는 강경한 전랑 외교가 자국의 국가이익을 오히려 해쳤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히 3년간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인 중국으로서는 날 선 대립보다는 유화책을 통한 실리 추구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이 대만 문제나 남중국해 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우궈광(吳國光) 전 홍콩중문대 교수는 미국의소리(VOA) 기고문을 통해 “중국의 핵심이익이라고 함은 결국 현 정권의 이익이고, 이를 지켜가기 위해 ‘행패 부리는 늑대’와 ‘웃는 얼굴의 호랑이’를 번갈아가면서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의심하고 있는 서구사회 = 그러나 이 같은 중국의 구애에도 아직 유럽 등 선진국들은 여전히 중국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이번 회의에서 “외교 분쟁 등을 이유로 다른 나라에 경제적 보복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WSJ는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G7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참여 의사를 보였던 이탈리아가 최근 이를 철회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중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구 국가와 전문가들은 중국이 신냉전 상황을 경계하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으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와의 연대를 끊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은 친 부장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중립은 공격자(러시아)의 편을 든다는 의미”라면서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할 원칙은 피해자(우크라이나)의 편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울리히 브뤼크너 베를린 스탠퍼드대 교수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주권 국가의 영토 보전을 존중하고 러시아에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러시아와 밀착 강화

북극 자원개발 협력하고 항만 사용권 얻어…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활동도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대러 지원’에 반대하고 특히 군사적 협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중국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계속하는 등 서구 사회와 러시아 사이의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중국 해경국은 지난 4월 24∼25일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해상에서의 법 집행 협력 강화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국이 북극에서의 이권 확보를 위한 협력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러시아 입장에선 북극위원회 소속 8개국(캐나다·미국·러시아·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덴마크) 중 러시아를 제외한 6개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데다 스웨덴도 나토 가입을 신청한 상태라 북극 자원의 이권을 지키는 데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극 지역을 ‘뒷마당’으로 여겨온 러시아는 북극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서구 국가들보다 선점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근(近) 북극 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은 북극 천연자원과 항로 접근을 노려왔으며 2018년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범위에 북극을 넣어 ‘빙상 실크로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최근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자국 항구처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내주기도 했고,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사업가들을 이끌고 대거 중국을 찾기로 하는 등 중·러 양국의 밀착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 외교를 위한 중국의 특사격인 리후이(李輝) 중국 유라시아사무특별대표가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5개국 순방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외교부 등에 따르면 리 대표는 16∼1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뒤 폴란드, 프랑스, 독일을 거쳐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방문한다. 리 특별대표는 키이우를 찾아 우크라이나의 요구와 견해를 청취한 뒤 이를 토대로 폴란드,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들과 협의하고, 마지막으로 러시아에 안을 제시하고 답을 구할 전망이다. 중국은 △유엔 헌장의 취지와 원칙 준수 △모든 국가의 합리적 안보 우려 존중 △우크라이나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는 모든 노력 지지 △글로벌 생산·공급망 안정 보장 등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기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4개의 당위’를 기초로 중재에 나설 것임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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