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홈쇼핑 중독인데…"-87% 충격의 실적" 뜻밖의 걸림돌
[편집자주] 홈쇼핑이 고사 위기로 몰리고 있다. TV를 보는 인구가 점차 줄어드는 데다 e커머스 등 유통업계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홈쇼핑 사업이 침체되면 IPTV, SO 등 유료방송업자들도 함께 흔들린다. 유료방송업자들은 홈쇼핑 송출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홈쇼핑을 죄고 있는 낡은 규제를 풀어 공정 경쟁을 통한 이익 창출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이 쇠락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이지만 홈쇼핑의 추락은 그들만의 위기가 아니라는 점에 간단치 않은 문제다. 홈쇼핑은 송출수수료를 통해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든든한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금도 적잖이 내고 있다. 홈쇼핑 산업이 침체되면 방송시장도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홈쇼핑 업계는 특혜나 혜택을 달라는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규제를 풀고 사업 자율성을 확대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홈쇼핑, 1분기 영업익 급감...T커머스 1,3위는 '적자'
올 1분기 홈쇼핑 상위 4사(현대·CJ·GS·롯데)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2.4% 급감한 71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3% 감소한 1조1033억원으로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9%에서 올해 6.4%로 떨어졌다.
롯데홈쇼핑의 영업이익이 87.6% 감소했고 현대홈쇼핑은 49.3% 줄었다. 롯데홈쇼핑은 새벽시간대 방송금지라는 일회성 요인이 있긴 했지만 새벽방송의 매출 비중은 높지 않아 충격적인 결과다. 현대홈쇼핑은 실적 부진의 이유로 "TV부문에서 가전·렌탈·건강식품 편성 축소, 리빙 카테고리 부진으로 전사 취급고가 감소했고 송출료 증가 등으로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홈쇼핑보다 규모가 적은 T커머스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T커머스 상위 3사(SK스토아·KT알파·신세계라이브쇼핑)도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4% 감소한 2151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SK스토아와 신세계라이브쇼핑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홈쇼핑 산업이 침체하는 가장 큰 이유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신규 미디어 공세에 TV 시청 인구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어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2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TV 이용시간(유료 방송 포함)은 하루 평균 2시간36분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코로나19로 2020년에는 2시간 51분까지 늘어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시간 42분)보다도 짧아졌다.
반면 모호한 방송 심의규정과 중소기업 제품 의무 편성 등은 일반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A홈쇼핑 고위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는 연간 적자 기업이 탄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구조적인 사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출수수료 매년 2조...홈쇼핑 흔들리면 유료방송업계 '타격'
홈쇼핑 산업이 구조적으로 쇠퇴하면 송출수수료가 줄어 유료방송사들도 함께 부진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유료방송사들에게 대금을 받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지상파 방송사,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이 미치게 된다.
홈쇼핑은 유료방송사들의 돈줄이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IPTV(인터넷TV) 매출 중 홈쇼핑송출수수료 매출(1조3243억원) 비중은 28.6%에 달한다. 2018년 20%를 돌파한 이후에도 꾸준히 상승세다.
IPTV는 송출수수료 외에도 가입자들로부터 받는 방송수신료를 받고 있지만 핸드폰·인터넷 등 요금 결합 이용자들이 절반에 달해 수익을 내긴 어렵다. 실제로 미디어 리서치 회사인 오미디어(Omdia)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유료방송 월 평균 ARPU(가입자당평균매출)는 17.4달러로 OECD 주요 국가의 유료 방송 전체 월 평균(30.3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케이블방송사(SO)는 매출 중 홈쇼핑송출 수수료(7470억원) 비중이 40.3%에 달한다. 유영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OTT를 비롯한 미디어 시장에서의 경쟁매체의 등장과 가입자 포화 등으로 유료방송은 추세적으로 이익창출력을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홈쇼핑→유료방송사로 이어지는 수익 구조가 악화되면 전체 방송사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료방송사는 홈쇼핑에서 송출수수료를 받아 PP들에게 콘텐츠 사용료를 지급한다. 홈쇼핑은 또 매년 방송통신발전기금 방송사 분담금 약 1800억원 중 400억~500억원을 내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홈쇼핑도 새로운 유통환경에 맞춰 디지털커머스를 보완하고 50~60대 여성으로 축소되고 있는 소비자층을 젊은 세대로 확대해야 한다"며 "방송과 커머스가 결합된 장점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 지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니 당황스러워요"
홈쇼핑 업계가 점차 사양 산업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선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나친 규제'를 꼽는다.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상황에서 모호하고 형평성에 맞지 않는 규제가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홈쇼핑 사업자에 강제하고 있는 중소기업 상품 의무 편성 규제가 겹치면서 홈쇼핑 업계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홈쇼핑 성장 걸림돌은 '방송심의'…"애매모호한 규정 고쳐야"
홈쇼핑사들은 정부에 '방송심의' 규정을 명확하게 설정해달라고 토로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방송법'과 '상품소개 및 판매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심의 규정)'에 따라 방송내용을 심의하는데, 이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한 탓에 소극적으로 방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실제 지난달 SK스토아는 '백종원의 골목맛집 프로젝트 어머니의 옛날팥죽' 판매방송에서 '백종원의 골목식당' 로고를 반복 노출해 심의 규정 제18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인 '권고' 제재를 받았다. 방심위 심의는 제재 수위에 따라 △문제없음 △의견제시 △권고 △주의 △경고 △프로그램 정정·수정·중지나 관계자 징계 △과징금 순으로 나뉘는데, 주의부터 법정 제재 단계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시 감점 사유가 된다.
SK스토아가 받은 권고는 유사한 사례가 다시 발생할 경우 법정 제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홈쇼핑사 생존과 직결된 문제란 의미다. 하지만 규정 내에 '반복 노출'에 대한 이렇다 할 기준이 없어 향후 유사한 사례로 법정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심사위원 성향에 따라 비슷한 안건이어도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 없이 심사위원 성향, 당시 여론에 따라 제재가 달라지다 보니 홈쇼핑사로서는 항상 불안한 수밖에 없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소극적인 홈쇼핑 업계 VS 승승장구 '라이브커머스'
홈쇼핑사들의 판매 방송이 라이브커머스 등 경쟁 플랫폼보다 상대적으로 밋밋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심의 규정에 걸리지 않기 위해 상품 관련 설명을 소극적으로밖에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건강에 좋다'든지 '맛있다'든지 하는 간단한 표현에도 구체적인 연구 결과나 인증이 없으면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적극적인 상품 홍보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홈쇼핑사가 방송심의로 골머리를 앓는 사이 경쟁사의 '라이브커머스' 사업은 틈새를 비집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 업계 1위로 불리는 네이버 '쇼핑라이브'는 출시 1년 만에 거래액 25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3년이 채 안 돼 거래액 1조원을 뛰어넘는 등 급성장 중이다.
홈쇼핑과 동일하게 생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하지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분류되면서 보다 자유로운 상품 홍보·판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각종 미사여구로 상품 구매를 유혹하는 라이브커머스에 더 끌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홈쇼핑사들도 라이브커머스 시장 공략에 나서고는 있지만 정작 본업인 TV 생방송이 이렇다 할 힘을 못 내고 있다.
◇홈쇼핑 내 중소기업 상품 편성 비중 평균 70% 수준…"비중이라도 줄여 달라"
이렇다 보니 홈쇼핑 업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사실상 강제하고 있는 중소기업 편성 규제라도 풀어달라는 입장이다. 홈쇼핑사의 재허가·재승인 주체인 과기부가 중소기업 상품 편성 비중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어서다.
실제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2021년 국내 TV홈쇼핑 7개 사의 중소기업제품 편성 비중은 70.7% 수준이다. 홈쇼핑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 홈쇼핑사 중에선 롯데홈쇼핑이 70%로 가장 높고 공공성격의 홈앤쇼핑은 80%, 공영홈쇼핑은 100%다. 이 경우 상반기에 객단가가 높은 대기업 가전 제품을 팔게 되면 하반기에는 사실상 중소기업 제품만 팔아야 하는 셈이다.
홈쇼핑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제품이 잘 팔려 대기업이 되면 홈쇼핑에서 판매가 어렵게 된다"며 "홈쇼핑이나 중소기업 모두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임찬영 기자 chan0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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