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00명 섬을 70만 명이 찾았다. 보랏빛의 정체는?
프랑스 남프로방스의 작은 마을 발렝솔과 일본 홋카이도 후라노를 세계적 명소로 만든 것은 보랏빛의 작은 허브식물이다. 드넓은 목초지 외에 특별히 볼거리랄 게 없는 작은 마을 후라노를 아시아의 프로방스로 만든 것은 라벤더다.
박지도와 반월도는 신안군(박우량 군수)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은 작은 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제 섬이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답게 예전 두 섬에 사는 주민들은 썰물 때면 노둣길(징검다리)로 왕래했다. 주민들은 농사와 낙지잡이, 감태매기, 석화따기로 아이들을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이 700여 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 70대 이상이 대부분이며, 아이 울음소리는 그친 지 오래됐다. 삶의 기억과 섬의 역사가 썰물처럼 씻겨 나갈지 모른다는 무력감이 납덩이처럼 섬주민들을 짓눌렀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은 있었지만 궁벽한 섬에 상황을 바꿀 여유는 없었다. 주민들은 마을에 지천으로 널린 도라지꽃을 떠올렸다. 주민들의 찬거리인 도라지는 여름마다 보라색으로 섬을 물들였다. 신안군도 여기에 주목했다. 박지도와 반월도가 '퍼플섬'으로 시동을 거는 순간이었다.
유엔과 외신도 놀란 '보랏빛 마케팅'
신안군은 2019년부터 섬을 보라색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CNN 등 해외 언론들이 '도박 같은 승부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신안군 컬러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먼저 마을 지붕과 섬으로 연결한 다리, 작물들을 보라색으로 통일했다. 주민들 옷은 물론, 우체통, 쓰레기통, 전동차, 커피잔, 컵 등 생활도구도 보라색으로 바꿨다. 해안 산책로에는 라벤더, 자목련, 수국 등 보랏빛 꽃들을 심었다.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길이 1004m의 다리도 보라색으로 바꿨고 밭작물도 보라색 순무, 콜라비 같은 것들을 심었다. 국내 어느 지자체도 시도한 적이 없는 기상천외한 '컬러 마케팅'이었다.
2019년 4월 천사대교 준공으로 신안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라벤더와 이스타국화가 피어 있는 퍼플섬은 '보랏빛 천국'이라는 명성을 국내외에 알렸다.
주민들과 신안군이 힘을 합친 보라색 마케팅 3년째. 유엔도 화답했다. 지난 2021년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총회에서 반월도와 박지도가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된 것.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은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홍보, 관광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수행하고 있는 세계의 마을들을 평가해 인증해 주는 사업으로 75개국 174개 마을과 치열한 경쟁 끝에 선정됐다.
박우량 군수 "신안만의 부가가치 살리겠다"
박우량 군수는 인터뷰에서 "고층건물과 쇼핑몰이 신안의 미래는 아니다. 찾아오고 싶은 신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데는 없는 신안만이 갖고 있는 것들에 부가가치를 더해야 한다. 나는 그 부가가치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섬마다 특색 있는 꽃을 심는 '1도1꽃' 사업도 그래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안만의 부가가치에 물과 기름을 준 박 군수의 컬러 마케팅은 완전히 개화했다.
5월 19일부터 10일 동안 '라벤더 축제'
지난 2021년 퍼플섬 선포 이후 주민 100여 명만 사는 박지도와 반월도에 70만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5월 19일부터 5월 28일까지 10일간 라벤더 축제가 열린다. 이번 축제는 퍼플섬 조성 이후 처음 열리는 라벤더 축제로 신안군에서는 1만 평 규모의 라벤터 정원을 별도로 꾸몄다. 밴드들의 버스킹, 라벤더 향 만들기 등 찾은 이들이 지루할 틈 없는 다채로운 행사도 준비돼 있다. 라벤더는 로마시대에 무척 귀한 허브였다. 라벤더 한 단 가격이 로마 병사 한 달 월급에 맞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왕실 정원수로 길러졌으며 엘리자베스 1세가 가장 좋아한 디저트가 라벤더 과자였다고 한다.
라벤더 축제가 끝나면 6월에 봄 버들마편초 축제, 8월 여름 버들마편초 축제, 9월 아스타 꽃 축제가 펼쳐진다. 아스타 꽃 축제 이후에도 버들마편초, 진자주국화, 오동나무 등 다양한 꽃들이 퍼플섬에 함께한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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