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찾아 헤매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시

김영화 기자 2023. 5. 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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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콜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을 냈다. 여성, 아시아인, 이방인이라서 겪는 폭력에 대해 날카롭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소호 시인은 <홈 스위트 홈>에서 집이라는 장소성에 주목했다. 가부장제 폭력이 도사리는 공간이면서 ‘경진’과 ‘시진’ 두 자매가 찾아 헤매는 곳이다. ⓒ시사IN 조남진

이소호 시인이 그리는 ‘집’의 풍경은 위태롭게 느껴진다. 아버지와 텔레비전 사이 놓인 아버지 다리를 넘자 ‘개념 없는 년’이라는 비방이 날아오거나, 코로나19 이후 가정폭력 지수가 늘었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뒤로 엄마는 ‘도마 위에서 푸르게 멍든 생선의 눈알을 판다'(‘손 없는 날’). ‘목소리 큰 자가 승리’하는 집안에서(‘구성원’) 자녀에게 주어지는 권한은 ‘세게 한 대 맞을래? 약하게 열 대 맞을래?’라는 빈약한 선택지뿐이다(‘홈 앳 홈’). 시적 화자가 방 안에 꼼짝 않고 일흔두 번씩 꾹꾹 눌러 담은 말은 다름 아닌 ‘살려주세요’다(‘밑바닥에서’).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시집을 내면 유독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지난 4월 세 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이 발간되었을 때도 그랬다. 그 질문이 늘 곤란하다는 이소호 시인은 “제가 거짓말을 잘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한다. ‘거짓말’로 빚어낸 시에는 그가 겪은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짜인지 굳이 밝히지 않으려 한다. 독자와의 약속이다.

그럴 땐 오히려 반문하기로 했다. ‘진짜라는 건 과연 무엇인가?’라고. “만약 오늘 안 좋은 일로 고통스럽다면 마음은 사막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내 몸은 여기에 있지만 사막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불편하다는 감각만은 실재한다고 본다. 독자들은 저마다 겪어온 일상 속 폭력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소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사막 한가운데 와 있게 된다.

남다른 리얼함은 ‘나’나 ‘그녀’처럼 뭉뚱그려진 화자가 아니라 ‘경진’이라는 구체적인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진은 이소호 시인의 개명 전 이름이다. 2014년 개명했다. 소금 소(䴛)에 좋을 호(好). 등단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이름에 있다고 생각했다. 4년 가까이 투고했지만 번번이 탈락하던 시절이었다. 법원에서 개명 허가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시〉 등단 소식을 들었다.

그즈음엔 다른 시도 읽지 않았다. 너무 좋으면 혹여라도 닮게 될까 봐 일부러 피했다.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해 분투하던 와중에 나온 게 시집 〈캣콜링〉이다. ‘경진이’가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30년간 겪은 차별과 폭력을 낱낱이 펼쳐 보인다. 속의 것을 토해내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으로 2018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가 쓰여야만 했던 거센 에너지, 시인 내면과 외부의 세상 사이의 압력과 분출을 보여주는 유일한 응모작”이란 심사평을 받았다.

“우리 집은 핸드폰에 있다”

〈홈 스위트 홈〉은 〈캣콜링〉(2018)과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2021) 뒤를 잇는 이소호 시인의 2년 만의 시집이다. 5년 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시를 ‘폭력의 시’라고 소개했던 문제의식은 그대로 이어진다. 여성이 겪는 폭력과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을 주로 다루는데, 모호함 없이 직설적인 게 특징이다. 집을 떠나 호주(오스트레일리아)로 간 동생은 ‘플리즈’라는 단어를 문장 뒤에 붙이지 않아서 혼났다는 말에, ‘외국인이 영어를 모른다고 쏘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자신의 뉴욕 어학연수 시절을 떠올린다. 시 제목은 ‘컴백홈’.

여성들이 집에 대해 갖는 양가적인 감정에 주목했다. 시에서 집은 가부장제 폭력이 도사리는 공간이면서, ‘경진’과 ‘시진’ 두 자매가 정처없이 찾아 헤매는 곳이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되면서 깊어진 고민이다. “가족은 한 인간이 유일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만나게 되는 가장 작은 사회적 집단이고 그로 인해 가장 먼저 갈등이 발발하는 곳이다.” 첫 장에서 시인은 ‘집’에 있어도 ‘집’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시를 썼다고 설명한다. 처음 집은 'house'로, 두 번째 집은 'home'으로 번역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소호 시인의 시집 <홈 스위트 홈>과 산문집 <서른다섯, 늙는 기분>,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시사IN 조남진

하루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동생이 물었다. “그럼 우리 집은 어딨어?” 이소호 시인은 “우리 집은 핸드폰에 있다”라고 답했다. 말 그대로였다. 아버지가 퇴직 후 다른 지역에 직장을 찾게 되었고 동생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 할머니와 어머니까지 세 모녀가 살던 중 할머니가 코로나19로 돌아가셨다. 가족이란 더 이상 한 집에 사는 구성원이 아니라, 전화번호부의 즐겨찾기 목록에서 볼 수 있는 존재였다. 이소호 시인이 ‘(가족은) 높아진 서울 집값 때문에 소프트웨어로서의 가족만 남아 현재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중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썼다. 가족에 대한 복잡미묘한 심경을 압축한 한 문장이다.

이처럼 〈홈 스위트 홈〉의 시들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여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시계관’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시와 세계관의 합성어다. 실제로 책을 열면 이 시집이 ‘소호 문학 전집 시리즈 07’에 속해 있다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소개글이 나온다.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는 뉴욕 ‘뉴뮤지엄’에서 기획 중인 전시회 도록이 등장한다. 둘 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현실이다. 아이돌 덕후라는 이소호 시인이 “시 내용이 끔찍하고 슬프더라도 이번에는 이런 세계로 나를 초대하는구나 싶었으면” 해서 넣은 장치다. 능청스러운 거짓말로 독자들은 몰입하게 된다.

전업 시인으로 활동하기 전까지 광고회사를 다녔다. 타이포그래피부터 텍스트 콜라주 기법 등 문자와 이미지를 활용한 실험시 장르가 많은 것도 그 영향이 크다. 들리는 시만큼 보이는 시도 중요하다고 본다. 시도 그림처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시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의 경우 2020년 2월 한 달 동안 일어난 여성 대상 범죄 기사를 모아 재구성했다. 코로나19 초기, 서로 마주하지 못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던 때였다. 단 한 줄이 전문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지는 얼마나 깨끗하다고 유난이야 못생긴 주제에 기어서라도 집에 갔어야지’(‘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받아쓰기로 고발하는 어떤 현실이다.

일부 독자들은 불편해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가감 없이 전시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존재한다. 이소호 시인은 누군가를 고발하거나 칼을 겨누려는 마음으로 쓴 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게 과장됐다고 해도 상관없다. 공감받기 위해 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겪은 일들을, 누군가 겪었을 일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누구에겐 고발이 되고 누구에겐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그의 시로 위로받는 독자들이 많았다. 이소호 작가는 “그냥 일상”에 대해 썼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지난 6년간 시와 산문집 여섯 권을 냈다. 5월엔 첫 소설 〈나의 미치광이 이웃〉도 발간을 앞두고 있다. 가까운 기후·식량 위기 시대, 해수면 상승으로 고향을 잃은 난민과 한국인 유학생이 뜻밖의 여정을 떠나는 중단편 소설이다. ‘다작 활동’이라는 수식어는 원치 않는다. 그때마다 열심히 썼을 뿐인데 ‘다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 것 같아서다. 남들보다 부지런한 편이다. 전업 작가가 된 뒤로는 장르에 관계없이 매일매일 글을 쓴다. “산문집을 준비할 때는 저녁 8시 이후로 무조건 한 편씩 썼다.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와도 꼭 쓰고 잤다. 그러니까 빨리 나올 수밖에 없다.” 자기만족이 없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돈도 안 되고 독자도 소설보다 적다. 시를 쓴다고 하면 ‘멋있다’가 아니라 ‘어떻게 먹고살아?’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다 알고도 좋았으니까 선택했다.”

일상 속 폭력에 대해 시로 쓰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소호 시인은 “시를 쓸 때만큼 자신에게 솔직해져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시사IN 조남진

인터뷰를 한 5월1일 하루 전 마침 낭독회가 있었다. 이소호 시인은 대화체를 최대한 살려서, 호흡을 조절하며 읽었다. 그날은 표제작 ‘홈 스위트 홈’을 읽었다. ‘아빠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 앞에서 거칠게 거수/했고, 모서리를 향해 발길질하겠다고, 겁을 줬다 단지 겁/을 줬을 뿐인데 내 펜은 부러졌고, 혀로/ 휘둘렸다.’ 이소호 시인의 말이 빨라졌다. “이 부분은 좀 속도감 있게 읽는다. 왜냐하면 그 폭력이 일어나는 건 찰나니까.” 혼자 읽는 것보다 느낌이 확연히 달라서, 그의 낭독회에 많은 팬들이 찾는다. 2030대 여성 독자층이 주를 이룬다.

일상 속 폭력에 대해 시로 쓰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시를 쓸 때만큼 자신에게 솔직해져본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집(house)과 집(home) 사이의 결핍과 간극에 대해서, ‘경진’이란 여성이 거쳐왔을 폭력에 대해서, 또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꺼내보고 싶었다. 정작 가족들은 ‘쓰임’에 즐거워하는 반응이다. “이소호가 만든 연극에서 자신이 이런 배역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나 현실감 있게 썼냐면 엄마도 ‘우리가 이런 적이 있던가?’ 하고 물을 정도다. 동생도 속는다. 제가 거짓말을 잘한다 말하지 않았나.” 그의 거짓말을 따라 어느새 사막으로 이끌려온 독자는, 시의 한 구절 앞에 멈출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 진짜 재미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일까?’(‘가름끈이 머물던 자리’)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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