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날개 왜 달아주나”vs “빗장 풀어야”…건강보험 데이터 공개 갑론을박
의료데이터 제공 문 열리나 기대했지만
시민단체 의료계 거센 반대에 진통
“국민이 쌓은 건보 데이터, 민간 보험사가 왜 탐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축적된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보험사들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 마련에 나선 가운데,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대가 거세게 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데이터 사용 허가권을 쥔 건강보험공단이 마련한 토론회에서는 국민적 합의가 없이 정보를 공개하면 역풍을 맞을 것이란 지적이 쏟아졌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건강보험자료의 민간제공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건강보험자료 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보험업계는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한화생명이 신청한 건강보험정보 공개 심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는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무상의료운동본부)가 난입하면서 시작부터 진통을 겪었다. 이 단체 관계자는 " 윤석열 정부 들어서 민간 보험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라며 “민간보험사에 개인건강정보 제공하려는 토론회는 요식행위”라고 비판했다.
건보공단의 의료데이터 개방은 보험업계의 숙원이자,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0년 1월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하면서 민간의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졌다.
금융위원회는 같은 해 8월 ‘정보 주체의 동의가 없어도 보험사가 건강·질병 가명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법령 해석을 제시했고, 법제처·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지난 2021년 1월과 3월 같은 취지 법령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국내 보험사들이 건보공단의 의료데이터를 이용한 사례는 아직 단 한건도 없다. 지난 2021년 9월 한화생명 등 5개 보험사가 건보공단에 공공 의료 데이터 이용을 신청했지만 공단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한화생명이 같은 해 12월 재차 신청했으나 건보공단이 심의를 미뤘다.
하지만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건강보험자료 공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10월 국민에 불이익을 주는 연구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공단이 연구에 참여해 정보를 보완하고, 연구결과를 활용할 때 공단으로부터 사전동의를 획득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방향을 정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정한다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보험업계를 제외한 나머지 단체들이 건강보험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것은 이 정보의 특수성 때문이다. 건강보험에는 가입 자격, 병의원 등 진료이력, 건강검진, 장기요양보험, 자동차보험, 재산 규모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모두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40대 남성 가운데 만성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이 몇 명이고, 거주지가 어디인지. 국가 암 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소득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더욱이 전국민의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둔 것은 전세계에 유례가 없는 경우다. 한국은 개인이 건보 가입을 거부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건강보험 정보는 정부와 학계의 기초연구, 정책 활용에만 제한적으로 쓰이고 있다.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민간에 이 같은 공공데이터를 공개했을 경우, 이 데이터가 국민을 위해 쓰이는 것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본다. 대한병원협회 디지털헬스케어 자문위원인 김성현 휴먼영상센터 원장은 이날 “민간 보험사는 영리 추구가 목적인 회사”라며 “의료 공공 데이터를 영리목적으로 쓴다면 보험사의 비용은 낮추고, 소비자는 비용을 더 부담하는 식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 들어 건보공단은 간담회 및 토론회 등을 통해 시민단체와 의료계를 설득해 왔다. 디지털 경제 활성화, 의료기기 및 건강서비스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해당 정보를 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게 해 주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날 참석자 대부분은 반대 의견을 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큰 질환에 대해서는 가입을 거절하고, 나아가 보험료 인상의 자료로 삼게 될 것”이라며 “민간 기업이 공공에 굳이 공공의료데이터를 무상으로 쓰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명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책통계지원센터장도 “건강보험 빅데이터는 공적 재원으로 마련된 정보”라며 “보험상품의 고도화를 위해 이런 정보가 필요하다면 보험사가 자기 재원으로 직접 자료를 구축·분석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김철중 위원장은 “(토론회는) 건강보험 자료를 민간보험사에 제공하기 위한 제반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반대했다.
다만 손호준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건보공단 데이터는 사회적으로 소중한 자산이며, 이런 자산을 국민을 위해 의미있게 잘 쓰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라며 “개방을 전제로 한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 과장은 “우리 국민 다수의 편익에 도움이 된다면 정보 개방의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라며 “논의를 통해 쟁점을 해소하고 조금씩 진전해 나가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이정수 건보공단 빅데이터전략본부장은 “국민 실익에 준해 자료제공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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