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끄덕끄덕]슬램덩크·스즈메·가오갤3의 흥행 공식
‘승리호’처럼 OTT의 선택을 받은 작품들은 그래도 제작비라도 건졌지만, 그러지 못한 작품들은 제작되고도 빛을 보지 못했다. 이런 작품들은 이른바 ‘창고 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코로나19 직전의 호황기에 기획돼 코로나 시기에 과도하게 제작된 이들 작품들은 엔데믹이 된 후 하나 둘 창고에서 개방됐다. 이들 창고 영화들이 큰 성공을 거두기란 애초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제 아무리 완성도와 대중성을 갖춘 작품이라고 해도 애초 개봉 시기를 놓친 작품들이 시의성이 있을 리가 없어서다. ‘범죄도시2’이후 한국영화들이 줄줄이 개봉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위기설이 나오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영화의 위기는 단지 팬데믹 때문만은 아니었다. 엔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전환됐지만 이미 OTT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예전처럼 극장을 잘 찾지 않았다. 꼭 극장에 가야 될 이유가 있는 작품들이 아니면 조금 기다렸다 OTT로 보는 새로운 소비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극장이 예전처럼 영화를 보는 유일한 창구가 되지 못하게 됐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여전히 극장만이 영화 관람의 공간으로 여기는 그 생각의 격차는 더더욱 영화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나마 최근 극장에서 관객을 끌어모은 건 외화들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60만 관객을 넘어섰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5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최근 개봉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가 270만 관객을 넘겼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200만 관객을 넘겼다. 이처럼 외화들이 선전을 하면서 한국영화들의 낯빛은 더 어두워졌다. 영화의 위기가 극장의 위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데서 나왔다는 걸 이들 외화의 선전이 방증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과연 극장을 찾지 않는 관객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을 내놓지 못해 한국영화들이 위기를 맞고 있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즉 현재 한국영화의 위기는 앞서 언급했던 이른바 ‘창고 영화’들이 가진 시의성 떨어지는 작품들의 문제와 더불어, 호황기 때 쉽게 투자제작을 하곤 했던 영화계의 관성으로 작품 자체가 가진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과거와는 달라진 관객들의 극장에 대한 인식으로 인한 영화 소비 패턴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확실히 이제 관객들이 극장을 가는 건,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어서다.
최근 성공을 거둔 외화들의 면면을 보면, 뚜렷하게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건 모든 작품들이 ‘팬덤’을 가진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N차 관람을 불러일으킨 ‘더 퍼스트 슬램덩크’ 신드롬은 다름 아닌 90년대 만화 ‘슬램덩크’를 보던 세대들의 추억에 현 세대들까지 동참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신카이 마코토 팬덤이, ‘가디언즈 오브 갤러시3’에 마블 팬덤이, 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슈퍼마리오 게임을 했던 전 세대에 걸친 팬덤이 극장으로 기꺼이 발길을 옮겼다. 이들 영화들은 그래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응원과 지지가 결집됨으로써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달라졌다는 뜻이고, 따라서 영화도 만일 극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이런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이 기획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극장은 클라이밍장이나 강연장, 나아가 플레이존 같은 새로운 공간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또 프리미엄관 같은 고급화와 파티존 같은 프라이빗 공간으로의 변신도 선보이고 있다. 기존 멀티플렉스 체제의 극장 형태가 그저 과거 같은 방식의 영화상영만으로 운영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이미 멀티플렉스가 3D, 4D나 돌비 애트모스 같은 실감 영상 음향 시설을 통해 진화해오면서 어느 정도는 예고된 일이다. 즉 멀티플렉스는 극장을 마치 테마파크 같은 일종의 체험장이나 이벤트장으로 진화시켜왔기 때문이다. 같은 영상이라도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체험을 해주는 공간으로서 극장은 진화해왔다. 그러니 그 방향성으로서 실감을 주는 영화나 클라이밍장, 강연장, 플레이존이 크게 다르다 볼 수 없다. 팬덤들이 모여 보는 영화가 그저 감상이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 영화의 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속화된 극장의 변화에 아직 영화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나오고 있다고 보인다. 굳이 극장만이 영화 상영의 궁극적인 공간이 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극장에 세우고 싶은 작품이라면 꼭 극장이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먼저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식을 지워내고 하나의 이벤트 공간이 됐다는 걸 인정해야 영화들이 갈 길이 정해지지 않을까. 물론 중소 규모의 작품성에 집중하는 그런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는 시네마테크 같은 공간이 필요할 수 있지만,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가능성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단관 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 변화해온 극장은 이제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극장과 함께 성장해온 영화도 이 변화에 대응하는 슬기로운 진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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