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재진 원칙·초진 일부 허용… 약 배송 제한

송민섭 2023. 5. 18. 06: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정, 시범사업 추진안 발표
“폐지 땐 국민 불편 커 제도화”
감염병 확진자·거동불편자 등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 허용키로
약사와 협의, 약 재택수령 검토
플랫폼 업계가 요구한 초진 대상
만성질환·벽지 환자 등으로 확대
여러 이해집단 요청 절충점 찾아
백령도 등 의원조차 없는 섬 환자
대면 진료 이력 없이도 이용 가능
마약류 등 우려 약품 처방은 불허
기대 컸던 업계 아쉬움 표명
“이용자 편의성 떨어진다” 불만 토로
“업계와 논의 없이 발표 문제” 지적도
일부 기업, 초진 제외되자 사업 전환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예상대로 재진 환자, 의원급 의료기관을 원칙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다만 병원에 가기 어려운 감염병 확진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등은 예외적으로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17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논의, 발표했다. 이날 협의회에는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만희 수석부의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강기윤 의원, 조규홍 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지난해 2월 17일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에서 오재국 원장이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보고있다. 공동취재
코로나19 위기단계가 ‘심각’으로 상향된 2020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는 위기단계가 ‘경계’로 하향되는 다음 달 1일부터는 예전처럼 불법 의료행위가 되기 때문에 정부는 관련 법제화 이전 시범사업 방식으로 비대면 진료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국민 만족도, 효과성, 해외사례 등을 고려할 때 비대면 진료가 중단되면 여러 가지로 국민 불편이 예상된다”면서 “비대면 진료를 연장해 상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정 합의안에 따르면 정부는 비대면 진료 3대 원칙으로 △국민건강 우선 △편의성 제고 △선택권 존중을 내세웠다. 환자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재진을 원칙으로 하되 섬·벽지 환자나 65세 이상 거동불편자 등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와 감염병 확진 환자의 경우 초진을 허용키로 했다. 애초 복지부 추진방안에 포함됐던 휴일·야간 18세 미만 소아 환자의 비대면 초진 허용 여부는 추가 검토를 거쳐 시행 이전 확정할 예정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만 비대면 진료를 시행한다는 원칙에도 예외는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희귀질환자나 수술·치료 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한 환자의 경우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다.

진료방식은 환자·의사가 상호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화상통신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스마트폰이 없거나 65세 이상 노인 등 화상통신 사용이 곤란한 환자들은 음성전화로도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은 이번 시범사업에서 비대면 약 배송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19 심각 단계에선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환자 위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약국으로 자동 연결했다. 6월부터는 비대면 진료 의사의 처방전을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팩스, 이메일 등을 송부해 환자 본인이나 대리인이 미리 지정한 약국에서 직접 수령해야 한다. 당정은 거동불편자 등 비대면 초진이 가능한 환자들의 경우 환자와 약사가 미리 협의해 재택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정은 이달 안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대상과 범위 등을 확정할 방침이다. 환자들 불편과 의료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 후 8월31일까지 석 달간 계도기간을 둘 예정이다.

◆희귀질환자 병원급도 허용… 편의성 높이고 부작용 최소화

당정이 17일 내놓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 중 눈에 띄는 대목은 국민 건강과 편의성 제고를 명분으로 비대면 진료를 둘러싼 여러 이해집단들 요구사항에 대한 절충점을 찾았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합의한 대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대상을 재진, 의원급을 원칙으로 하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이 요구한 초진 대상을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와 섬·벽지 환자 등으로 확대하고 희귀질환자로 국한하긴 했지만 병원급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게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 뉴스1
이날 복지부에 따르면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추진 원칙은 국민의 의료접근성 제고 및 부작용 최소화이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재진 중심으로 하되 초진 범위를 확대하고, 국민 편의성 제고를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또 환자 선택권을 존중해 의료기관이나 약국 지정 등 서비스 전반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예컨대 인천 백령도나 연평도처럼 의원급 의료기관조차 없거나 현저히 적은 섬·벽지 환자들과 65세 이상 장기요양등급자,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하거나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경우 이전에 대면 진료를 하지 않았더라도 화상통화를 통해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국가감염병이 또 유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감염병 확진환자나 특정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각각 1년과 한 달 이내 1회 이상 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만성질환자나 기타질환자(의사 판단) 역시 비대면 초진이 가능하다.

복지부는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대면 진료도 허용했다. 해당 의료기관에서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희귀질환자나 병원급 근무 의사가 수술·치료 후 신체 부착 의료기기 작동상태 점검이나 검사 결과 설명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환자의 경우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비대면 진료 대상의 확대는 닥터나우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실시를 강하게 반대해온 대한약사회 요구 사항도 일정 부분 추진방안에 담겼다. 의약품 수령을 환자가 지정한 약국에서 본인이나 대리인이 직접 수령하도록 강제한 점이 그것이다. 지금까진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앱이 환자 위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약국을 자동배정했다. 약사회는 지난 14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환자 중심 약국 선택권 보장’, ‘플랫폼 개입 없는 약사 주도의 합법적인 약 전달’ 등을 요구하며 비대면 진료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전환에 대한 약사회 반대 기조는 변함이 없다”며 “그나마 비대면 약 전달 금지 등 일부 요구사항이 반영돼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추진방안은 사실 복지부가 코로나19 위기단계 하향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비대면 진료 관련 단체들과 끊임없이 협의한 결과다. 지난 2월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재진·의원급 중심의 비대면 진료 원칙에 합의한 복지부는 이후 플랫폼 업체, 약사회 등을 만나 비대면 진료 실시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복지부는 이번에 시범사업 참여기관의 준수사항도 마련했다. 진료 의사는 비대면 진료 허용 대상 환자인지를 사전에 확인해야 하고, 의료법상 허가·신고된 진료실에서 진료를 해야 한다. 또 비대면 진료만 실시하는 의료기관이나 조제용 의약품만 취급하는 약 배달 전문 약국의 운영을 금지했다. 물론 마약류, 오·남용 우려 의약품은 비대면 처방할 수 없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당정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비대면 진료 법제화와 관련된 질문에 “코로나19 단계가 경계로 하향되면 비대면 진료가 불법화한다”며 “비대면 진료 제도화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고 복지부 입장에서는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된다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계 “약 배송 빠지면 반쪽짜리”

다음 달 1일부터 비대면 진료가 제한적으로 허용됐지만 플랫폼 업계는 아쉬움을 표했다. 해당 논의에 플랫폼 업계가 참여하지 못한 데다 ‘약 배송’도 원칙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17일 당정이 발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 중 특히 약 배송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데 관해 불만을 터트렸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에 속한 비대면 플랫폼 기업 18곳 중 거의 모든 업체가 약 배송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한다.

전신영 닥터나우 이사는 “진료는 비대면으로 받고 약은 나가서 받아야 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반쪽짜리 아니냐”며 “비대면 진료를 받는 국민 대부분이 경증 진료인데, 약 배송이 서비스에서 빠지면 이용자들의 편의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했다.

플랫폼 업계는 정부가 플랫폼 업계와 논의 없이 톱다운(Top Down·하향식)으로 시범사업을 발표하는 점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플랫폼 업체 등을 만나 비대면 진료 실시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했으나 원산협 측은 복지부와 시범사업에 관한 의견을 나눈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전 이사는 “이달 9일 복지부, 대한약사회와 비공개 회담을 하긴 했으나 약사회가 구상 중인 공적 플랫폼 얘기만 하고 시범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 명맥이 유지된다고는 하지만 업계의 불안은 여전하다”며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포함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가 자칫 국민이 체감하는 효용성을 떨어뜨리는 서비스로 이어지게 될까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당·정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비대면 진료가 전체적으로 축소된 데 관한 반발도 크다. 원산협은 지난달까지 ‘초진이 아니면 산업계가 고사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이달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재진으로 시범사업이 이어진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하자’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전 이사는 “재진이면 재진 환자를 어떻게 구분할지가 관건인데 환자들이 질병 코드를 일일이 외우지 못한다”며 “어떻게 재진 환자를 구분하고 적용할지가 중요한 부분이어서 이 부분이 구체화돼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범사업에서 초진이 빠지면서 실질적으로 서비스가 어려워진 곳도 있다. 비대면 질염 및 성병 자가 검사 키트 ‘체킷’ 서비스를 운영하는 쓰리제이가 대표적이다. 박지현 쓰리제이 대표는 “질염 및 성병 자가 검진 키트라는 서비스 특성상 의사를 대면하고 싶지 않은 고객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초진 비율이 높고, 초진 허용이 안 되면 서비스를 계속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이 재진부터 가능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 쓰리제이는 지난달부터 사업 전환에 돌입했다.

송민섭 선임기자, 유지혜·이지민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