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님 없는데 월세는 올라” 여전히 슬픔 가득한 이태원 상인들

이신혜 기자 2023. 5.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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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참사 발생 201일째... 손님 없는데 임대료는 더 올라
“1년 전 매출과 비교하면 60% 정도”
중기부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 추진...이태원 상권 회복 지원
상인들 “정부 저금리 대출도 원금 상환 압박 있어…지원 필요”
17일 오전 11시 30분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인적 없이 휑한 모습의 거리. /이신혜 기자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역 인근에서 압사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이태원 상권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참사 발생 201일째인 지난 17일,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는 걸어 다니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휑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점심 장사에 한창일 시간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문을 연 가게를 찾기는 어려웠다. 366m 길이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가게 34곳(1층 기준) 중 27곳은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을 연 음식점에도 식사하는 손님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을 닫은 곳 중에는 가스 공급 중단 고지서가 부착되어 있거나, 오랫동안 상품을 수령하지 않은 듯 택배 상자들이 쌓여있는 곳도 있었다.

이날 드라마 ‘이태원클라쓰’를 보고 촬영지 식당을 보러 왔다는 일본인 관광객 오오타 아즈사(38)씨는 “친구와 이태원클라쓰를 촬영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이태원에 왔는데 지난 참사를 알고 있어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원래 이태원이 밤 문화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참사 때문에 웃고 즐기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밤에는 다른 곳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29)씨는 “직장이 근처라 퇴근 후 가끔 이태원 펍을 찾아 맥주 한잔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참사 이후에는 좀 멀더라도 한남동이나 녹사평 쪽으로 발을 돌리게 된다”고 했다.

찾는 이가 없어 이태원 상인들은 답답하다는 반응이었다. 세계음식거리에서 펍을 운영하는 매니저 A씨는 “마케팅 업체에서 광고하라고 전화가 오는데 직원 월급도 (사장님이) 빚내서 주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이렇게 (오는) 사람이 없는데 광고를 하면 뭐 하나”라고 말했다.

문을 닫은 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가게에 도시가스 공급중단 알림 통지문이 부착돼있다. /이신혜 기자

참사 이후 줄어드는 소비자들 속에도 임대료는 되레 올라 이중 타격을 입었다는 곳도 있었다.

참사가 일어났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근처에서 30년째 가죽·밍크 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이모(50)씨는 “참사 이후에 유동 인구가 많이 줄어 장사가 잘 안 되는데 코로나로 잠깐 인하됐던 월세는 올해부터 다시 올랐다”며 “5~6평짜리 가게도 월 600~700만원을 내는데 버티고만 있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가게도 2층으로 뺐는데 재고 때문에 가게를 쉽게 접을 수도 없다”며 “정부의 저금리 대출을 이용했지만 원금 압박이 벌써 들어오고 결국 다 갚아야 하는 돈이라 답답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해 상권이 침체하자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도 나서 지원 및 홍보 방안을 구상하는 모습이다. 중기부는 지난 1~2월 원스톱지원센터를 만들어 운영했다. 지난달 27일 기준 상인들에게 긴급경영안정자금 164억원을 지원하고, 이태원상권회복상품권을 만들어 400억원을 판매했다.

3월 15일부터는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해 이태원 상인회, 서울시, 용산구, 동반성장위원회, 로컬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업계 등과 민관 원팀을 구성해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 이영 중기부 장관은 ‘이태원 회식 챌린지’를 제안해 인스타그램 동반성장위원회 계정에 인증사진을 올렸다. 연예인 최불암, 신현준 등도 이태원 회식 챌린지에 참여했다.

중기부는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4일 이태원역 거리에서 ‘헤이 이태원 소망볼’ 행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카카오, KT,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등 기업들이 동참해 상점 홍보에 나섰다. 대상,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공영홈쇼핑 등은 이태원 영수증 이벤트를 위한 경품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아울러 중기부는 오는 22일에는 해밀턴 호텔과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에 홍보 영상을 올리고, 이달 22일부터 3일간 그립에서 이태원 소상공인 매장 8곳의 제품 등을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그동안 이태원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중기부가 열심히 노력을 해왔고, 이태원이 앞으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소상공인, 중소기업들과도 협업을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초입에 마련된 추모공간. /이신혜 기자

이태원역을 찾는 발걸음은 조금씩 늘어나는 모양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이태원역 1~3월 수송인원은 47만8783명, 49만7224명, 61만4762명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년 동기(46만6285명, 39만3357명, 46만5137명)와 비교해도 수송인원이 더 늘었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 10월 이태원역 수송인원은 88만1066명에 달했으나, 참사가 일어난 후 수송인원은 11월 50만5077명, 12월 54만1088명으로 큰 폭으로 줄어든 바 있다. 연말에 가장 유동 인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유동 인구는 회복됐으나, 여전히 많은 이태원 상인들은 전년 대비 상권이 많이 침체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사고 발생 지역인 이태원1동의 올해 2월 4주 차 카드 매출액은 사고 발생 직전인 지난해 10월 4주 차 대비 57% 줄었다.

이태원 퀴논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황재민(35)씨는 “상권이 회복되고 있긴 하지만 참사 전인 전년 동기로 비교해도 매출이 60% 수준에 그친다”라며 “코로나 때 카페를 시작해 3년째 운영 중인데 그때보다 참사 이후 3개월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녁에 이태원을 찾던 분들이 다 한남동으로 가는 것 같은데 이태원도 많이 찾아주면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동욱 이태원1동 협의회장은 “참사 이후 시간이 흐른 만큼 (이태원을) 찾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매출상으로는 늘었다고 체감하긴 어렵다”며 “정부에서 그간 사람들이 이태원을 왜 찾았는지를 분석해 유스컬처(클럽과 공연 등 젊은이 중심 문화)와 이국적인 문화 등 이태원만의 특성을 살린 지원 활동을 해주시면 상권 활성화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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