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한파 대비 점포 줄이려는데… 금융당국 제동에 은행권 ‘속앓이’

진상훈 기자 2023. 5.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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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마진 하락, 대출 수요 감소에 경기침체
속타는 은행, 점포 폐쇄로 비용 감축 시도
당국 규제에 막혀 4월까지 폐쇄 점포 한자릿수
5대 시중은행들이 2020년 이후 오프라인 점포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조선비즈DB

국내 은행의 올해 실적이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준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금융 당국의 압박이 지속되면서 이자 마진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데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대출 수요마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실적 방어를 위해 점포와 인력을 감축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정부와 당국이 금융 소외계층 보호 등을 위해 은행의 점포 폐쇄에 제동을 걸면서 비용을 줄이는 일도 한층 까다로워졌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오프라인 점포 감축을 통해 줄인 비용을 다른 신사업 발굴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것은 과도한 관치 금융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 이자 마진 감소·대출 역성장·대손비용 증가 ‘3중고’

대신증권은 지난 11일 보고서를 통해 은행들이 하반기에 순이자마진(NIM) 하락과 대출 수요 감소, 대손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부진한 실적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근 연체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실적 개선을 기대할 만한 요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은행은 이미 1분기부터 실적이 점차 악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코로나19 사태 관련 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취약 부문에 대해 충당금 적립을 늘리면서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한 9315억원을 기록했다. SC제일은행 역시 비용과 충당금 증가로 순이익이 18.4% 줄어든 1265억원에 그쳤다.

1분기 실적 개선에 성공한 은행도 이자 마진 등 세부지표는 점차 부진한 흐름으로 돌아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1분기 1.59%의 NIM을 기록, 전 분기(1.67%)에 비해 0.08%포인트 하락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역시 같은 기간 NIM이 전 분기 대비 각각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은행의 금리 인상 적용 상품이 지난해 11월부터 판매가 소진돼 1분기부터 NIM은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며 “고금리로 신용대출과 전세대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데, 그동안 은행의 성장을 이끌어 온 중소기업 대출 잔고도 꺾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한도 규제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금리도 높아 주택담보대출 수요 회복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올해는 이자 마진과 성장이 모두 꺾이는 국면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정서희

◇ 금융 당국 “지점 문 닫기 전 평가부터 받아야”

은행은 비용 절감을 위해 오프라인 점포 수를 줄여왔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점포(지점과 출장소 합산) 수는 지난 2018년 3563개, 2019년 3579개였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에는 3303개로 전년 대비 300개 가까이 줄었고, 2021년에는 3079개, 지난해에는 2886개까지 줄었다.

시중은행이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순이익을 기록한 데는 금리 인상 과정에서 이자 수익이 급증한 가운데 점포 폐쇄로 비용을 절감한 부분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업황이 악화된 올해부터는 점포 폐쇄를 통한 비용 감축이 크게 어려워졌다. 금융 당국이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 보호 등을 명목으로 은행의 점포 폐쇄 기준을 까다롭게 바꿨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은행들이 점포를 폐쇄하기 전 받는 사전영향평가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대책을 이달부터 시행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점포를 닫기 위한 사전평가에 참여하는 외부전문가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려야 한다. 평가항목 역시 수익성 지표가 제외되는 대신 소비자 불편 관련 항목의 비중이 확대됐다.

금융감독원도 은행들의 점포 폐쇄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지금껏 은행은 점포 폐쇄와 관련한 경영공시를 1년에 한 차례 해 왔지만, 앞으로 분기에 한 번씩 공시를 해야 한다. 공시 내용도 기존에는 폐쇄 점포 수만 기록했지만, 이제 점포별 폐쇄 사유와 날짜, 대체할 수 있는 수단과 인근 지점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도록 바꿨다.

◇ “오프라인 점포 축소, 세계적 추세”

업황 악화로 실적 부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수단마저 줄어들면서 은행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도 수익을 내야 하는 사기업인데, 점포 수 조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지나친 관치가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 당국이 점포 폐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친 후 올해 들어 은행들의 점포 감소 폭은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63곳의 점포를 없앤 신한은행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10곳의 점포를 통폐합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55곳의 점포를 폐쇄했지만, 올해는 4월까지 고작 5곳의 점포만 문을 닫았다.

특히 은행들은 오프라인 점포 감축이 글로벌 금융 시장의 공통된 추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8000여개에 달했던 미국 상업은행 점포 수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4200여개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영국의 경우 2015년 1만7000여곳의 은행 점포가 2021년에는 7000여곳으로 급감했다. 캐나다 역시 2016년 6200여곳의 점포가 4년 만인 2000년에는 5800곳 이하로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역별 포화 상태나 고객 불편 여부 등을 점검해 점포 폐쇄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한다”며 “점포를 없앨 경우 생길 취약계층의 불편을 고려해 은행 간 공동점포 등을 확대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이 속한 금융지주사는 주식 시장에 상장돼 이익을 내야 하는 사기업에 해당된다”며 “업황 등을 고려해 정부와 금융 당국이 더 신중히 규제 여부를 검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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