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을 제3자가 보유"…원 장관 언급한 '에스크로' 실효성은?
2016년 국토부 주도로 거래안전도 높이는 '에스크로 시범상품' 출시
전문가들 "세입자 벼랑 끝 상황서 일부 자금 보전·투기 예방 효과"
"전세시장에 대한 기본적 이해 바탕…실효성 충분히 검토되어야"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전세제도가 그간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세금을 금융에 묶어놓는 에스크로 계좌 도입까지 얘기가 나오는데, 가능한 모든 방법을 올려놓고 검토하겠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대차 3법을 비롯해 현 전세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며,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전세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건네지 않고 에스크로 기관에 돈을 맡기게 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대인의 갭투자 등으로 임차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시스템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지난 1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주년 간담회를 열고 "전세제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갭투자를 조장하고, 전세대출과 조직적 사기 범죄 등 (전세제도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날 원 장관은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을 집주인이 아닌 금융기관에 맡겨놓는 '에스크로'와 가격에 대한 강력한 규제 등 일각에서 나오는 전세제도 개편방안 등을 언급, 전세제도 개편안을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원 장관은 "앞으로 예상되는 임대차 시장 문제를 분석·복기해서 가장 근본적인 전세제도 대안을 내놓을 때가 됐다"며 "이번 기회에 (전세제도를) 제대로 판 위에 올려 큰 그림을 한번 짜보겠다는 각오"라고 강조했다.
원 장관의 발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세 보증금 에스크로 계좌 도입이다. 과거 부동산 시장에서 실제 에스크로 도입 사례도 있었지만, 이번에 언급된 전세시장의 에스크로 도입은 '현실성'과 '실효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에스크로 제도는 온라인 전자상거래 '안심결제'와 같이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제삼자가 상거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중개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전자상거래 피해 방지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 5만원 이상의 결제금액은 의무적으로 에스크로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규정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 2016년 부동산 거래대금을 거래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보관해 거래안전도를 높이는 '에스크로(대금보장제)' 시범상품이 출시된 바 있다.
국토교통부가 우리은행, 퍼스트어메리칸권원보험, 직방과 부동산 안심거래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퍼스트어메리칸권원보험과 직방이 에스크로 시범상품을 론칭했다. 시범상품 운용 1년 후 종료됐다.
이 상품은 전세나 월세 등 임대차 계약 때 임차인이 지급하는 보증금(계약금, 잔금 등)을 계약 시점부터 입주 완료 시점까지 안전하게 보관하고 임차인의 동의하에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서비스다.
최근 수면 위로 오른 전세 보증금 에스크로 계좌 도입은 세입자가 전세금을 바로 집주인한테 주는 것이 아니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 보내면, 전세금 일부를 집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보증금을 HUG가 보관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즉,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제3의 기관(신탁사나 보증기관 등)에 입금하면 이들 기관이 보증금 일부를 예치하고, 나머지를 집주인에게 주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에스크로 계좌를 활용하면 전세 세입자가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에서 전세금을 일부라도 지킬 수 있고, 집주인의 갭투자 또는 투기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분양시장에서도 책임준공을 보장받는 신탁을 통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사실상 전세 제도는 사인들끼리의 거래라 방치될 수밖에 없었고, 부동산 사이클이 무한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스크로를 통한 일정 부분 개입도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전셋값이 폭락하면서 세입자의 피해가 현실화되니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세 피해의 경우 집주인의 원시적 사기냐, 본의 아니게 시장 상황에 따라 후발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느냐 이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에스크로 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만약 전세금이 10억원이라며, 7억원은 집주인에게 송금하고, 나머지 3억원은 기관을 활용해 예치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겠다"며 "이렇게 된다면 갭투자와 투기를 막을 수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경매에 넘어간다면 확보된 30%와 함께 전세 세입자의 손실액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전세금 에스크로 제도가 실행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임대인의 반발과 자금 손실 보전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송 대표는 "집주인의 전세 보증 보험료를 지원한다거나, 에스크로 운용으로 생기는 수익을 어떻게 운용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집주인, 세입자 모두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적어도 예치된 금액에 대한 은행 이자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통상 전세 보증금을 온전히 집주인이 운용하던 것에서 에스크로라는 제도를 활용해 정부의 개입이 통할 수 있는지 거시적 관점에서의 고민도 필요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 보증금 에스크로 계좌 도입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나, '전세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며 "전세를 놓고 무이자 대출과 같이 목돈을 마련해 집주인이 필요한 용도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많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산 매매의 경우 특정 상품의 에스크로 제도처럼 매수자, 매도자 모두 위험을 '헤지(금전 손실을 막 위한 대비책)' 할 수 있어 안심 결제 맥락에서는 충분히 유용한 제도로 볼 수 있다"며 "현재 HUG 전세보증보험 가입요건 강화 등의 조치가 취해진 가운데, 전세는 보증금을 적어도 2년 동안 묶어둬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지진 않는지, 실효성이 있는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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