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굴곡진 한국 정치사에서도 처음 보는 ‘대통령 거부권 유도’ 정략

조선일보 2023. 5. 18.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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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5.17.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양곡법에 이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입법권을 무시하고 삼권분립을 침해한 행위라는 것이다. 민주당 말대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하지만 국회가 입법권을 남용할 경우에 대비해 헌법이 마련한 견제 장치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다. 국회가 과잉 입법으로 삼권 분립에서 이탈할 때 삼권분립을 지키라고 만들어진 제도다.

지금 민주당의 정치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법을 계속 통과시켜 ‘무더기 거부권’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정부에 안기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쌀이 남아돌아 매년 10여 만t이 사료·주정용으로 처분되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그런데 쌀 생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쌀 매입에 매년 1조원 이상의 국민 세금을 퍼붓자는 것이 양곡법이다. 국가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쌀 과잉생산을 부추길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도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가 반대한 법을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인 것은 이 법이 시행될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예상하고 한 것이다.

간호법은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의 역할과 업무를 함께 규정한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사만 떼어내는 법이다. 다른 직역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충분한 논의 없이 간호사 처우만 개선하겠다고 하니 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이 ‘파업 불사’를 외쳤다. 의료 현장에 혼란이 생길 것이 뻔한데도 밀어붙였다. 간호사 수가 많으니 이들의 표를 얻고, 어차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테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계산을 한 것이다.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고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법일수록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조율 과정이 필요한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 법만 골라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있다. 그 과정에 출당 의원 안건조정위 투입, 법사위 패싱 본회의 직회부 등 온갖 꼼수도 동원했다. 민주당은 표를 얻고 대통령에겐 거부권 부담을 지우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날 민주당은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을 국회 상임위에서 또 단독 처리했다. 이 법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우려, 고졸 출신 대출자와의 형평성 등 많은 문제가 지적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 법 역시 거부권으로 무산될 테지만 대학생 표를 얻고 대통령에겐 거부권 부담을더 늘릴 수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앞으로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 공영방송 이사진을 자기들 편으로 만드는 방송법 등도 일방 처리를 예고한 상태다. 모두 민주당 정권 때는 반대했던 법이지만 같은 정략으로 밀어붙인다. 내년 총선까지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국회 다수당이 이렇게 무책임한 것은 굴곡 많은 우리 정치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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