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文 정부서 탈탈 털린 김관진, 北 金씨 부자 떨게 한 죄
A4 한 장 댓글 보고서 봤다고 정치 관여 2년 4개월형 선고… 5년 동안 44회 재판 시달려
主敵에 원칙 대응 사명 다한 게 北 심기 경호 정권에 미운털
으르렁대는 군견(軍犬)들이 김관진 국방장관 가면을 쓴 인형을 쓰러뜨리고 물어뜯는다. 북한군들이 김 장관 얼굴 밑에 ‘김관진 놈’이라고 쓴 표적지를 향해 사격 훈련을 한다. “김관진 XX 같은 전쟁 대결 광신자 때문에 남조선 인민들이 큰 변고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인터뷰가 뒤따른다. 2014년 4월 방영한 북한 방송 내용이다.
국방장관실로 배달된 협박 편지엔 “김관진은 더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북한 조평통 대변인이 “김관진은 가소로운 망동을 멈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이 대통령도 아닌 특정 인사를 이처럼 집요하게 공격한 사례는 없었다. 김 전 장관이 눈엣가시였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을 발표한 것은 2010년 11월 26일이었다. 북의 연평도 포격 사흘 뒤였다. 김 장관은 북이 도발 핑계로 삼았던 서해 포격 훈련을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북이 재도발을 위협하면서 하루하루 긴장이 고조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주한 미군 사령관까지 자제를 요청했다. 김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훈련 개시에 맞춰 전투기에 미사일을 장착하고 출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미사일을 쏘지 않고 돌아오면 착륙 때 폭발 위험이 있다고 부하들이 말렸지만 밀어붙였다. 북에도 이 사실을 일부러 흘렸다. 훈련 전날인 12월 19일, 김정일이 북한군 지휘부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을 정보 당국이 포착했다. 김 장관의 기세에 겁먹고 움츠러든 것이다. 김관진 국방장관 재임 기간 북의 추가 도발은 없었다. 미 국방부는 이를 김관진 효과(effect)라고 불렀다. 김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임된 데 이어 국가안보실장까지 지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김관진 사냥’이 시작됐다. 사드 추가 반입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청와대 조사가 신호탄이었다. 사드가 추가로 들어온 것은 언론 보도로 천하가 아는 사실인데 대단한 은폐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군 정치 댓글 지시, 세월호 조작, 세월호 유족 사찰, 계엄령 문건, 차기 전투기 기종 결정, 제주 해군기지 정치 중립 위반 등 김관진을 겨냥한 혐의가 차례차례 등장했다. 이 혐의가 안 되면 저 혐의,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혐의를 들췄다. 함께 수사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김관진에 대해 불라는데, 없는 걸 어떻게 만드나. 할복이라도 할까”라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실질적인 수사 지휘부는 문재인 청와대였다. 청와대 행정관은 군 기밀 자료를 영장 없이 열람한 후 2014년 무혐의 처리된 군 댓글 혐의를 재수사하도록 몰아갔다. 인도 순방 중이던 대통령이 기무사 계엄 문건 별도 수사팀을 만들라고 특별 지시하기도 했다.
억지로 엮다 보니 전체 혐의 7가지 중 5가지가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됐다. 세월호 조작도 1심, 2심, 대법원 모두 무죄판결이었다. 군 댓글 사건은 구속, 적부심 석방, 재영장 청구, 기각 등을 거쳐 2심에서 2년 4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2011~2013년 사이버 사령부 댓글 78만건 중 8800여 건이 정치적 내용이며, 김 전 장관이 매일 아침 책상에 오르는 보고서 10여 건 중 댓글 보고서를 읽었다는 갈매기 표시를 남겼다는 게 유죄 근거였다. 달랑 A4 용지 한 장으로 요약된 보고서를 읽어봤다 한들, 하루 평균 1000건 내외 댓글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었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대법원이 일부 무죄 취지 파기 환송한 2심이 곧 재개될 예정이다. 김 전 장관이 2018년 이후 출석한 재판은 댓글 사건으로 28회, 세월호 사건으로 16회 등 총 44회다.
김 전 장관은 정파적 인물이 아니다. 2010년 12월 장관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민주당 의원들은 “장관 잘 뽑았다” “확고한 자세가 든든하다”고 호평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야당을 자극할 정치적 언행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을 때 당시 국방장관이 “다행”이라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벌 떼같이 일어나 장관을 질타했다. 도대체 뭣 때문에 그토록 밉보였을까.
김 전 장관이 도드라지게 한 일이 있다면 북의 도발에 원칙적 대응을 한 것뿐이다. 임기 5년 내내 김정은 심기 경호에 올인한 문 정권 입장에선 그것이 대역죄였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국군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주적(主敵)의 수괴를 떨게 만든 ‘죄과’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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