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오월, 국가와 상징정치

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3. 5.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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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원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자

오월은 저항과 혁명의 상징이다. 5·1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한 자본 권력과 이를 뒷받침한 공권력에 파업으로 맞선 노동자들의 연대와 이러한 연대를 조작과 폭력으로 탄압한 국가와 자본의 결탁(1886년, 헤이마켓 사건)을 기억하려는 국제적 상징이고, 5·11은 수탈의 대상이었던 광범위한 농민 대중이 억압의 주체를 뚜렷하게 응시하며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내걸고 봉기한 동학농민혁명을 계승하기 위한 상징이며, 5·18은 헌정질서 파괴와 반인도적 범죄에 맞선 시민의 민주주의 운동을 잇기 위한 상징이다. 이들은 모두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국가의례로 재생되고 있는 공적 상징이자, 헌법정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헌법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점,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항일무장투쟁·4·19혁명·5·18민주화운동의 모태로서 인간의 존엄·평등·자주·독립 등의 헌정사적 뿌리인 점, 현행 헌법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에서부터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독재에 저항해 온 누적된 실천의 산물인 점 등을 통해서도 뒷받침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들이 권력의 노리개로 전락하거나 난폭하고 무능하며 무책임한 권력 행사를 감추는 위장으로 조롱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상징의 의미를 받들어 노동자들의 연대를 장려하고 반봉건·반외세·자주·독립을 드높이며 민주주의의 실질화를 위해 애쓰는 것은 국가기관의 마땅한 의무수행의 일환이 된다. 국가기관은 주권자인 우리를 위해 헌법에 서린 정신을 구현해야 할 의무자이고, 헌법적 상징은 국가기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받들어야 할 표적이며, 무엇보다도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주인으로서, 헌법에 아로새겨진 노동자·농민·시민의 저항과 혁명 정신을 무섭게 기억하고 엄중히 받들 수밖에 없도록 정권을 끊임없이 다그쳐야 한다. 그리고 저항과 혁명의 달 오월에 윤석열 정부에게 특별히 묻고 추궁해야 한다. 첫째,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의식을 각성시켜 노동자 간의 연대가 고양될 수 있도록 노력했는지, 아니면 이러한 노력을 탄압의 대상으로 관리해 온 것인지,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계형 개인사업자에게 ‘사장님’이라는 허울을 덧씌워 그들의 노동환경은 등한시하고 현대판 봉건제의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자본가의 이해에 복무하여 ‘주 69시간 근무제’를 내걸었던 것 아닌지. 둘째, 일제 전범기업이 책임져야 할 배상금을 떠안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계획을 소 닭 보듯 하며 동맹국으로부터 당한 도·감청을 외면하려고 애쓴 비굴함은 외세와 외세추종자에 기대어 정권의 안위를 보장받고자 함은 아닌지, 나아가 외세의 앞잡이로 거들먹대고 싶은 마음에 우크라이나 안보지원과 대만 발언 및 핵무장의 가능성을 내비침으로써 대책 없이 불필요하게 또 다른 외세를 자극해 우리의 평화와 자주·독립에 상처를 남긴 것 아닌지. 셋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낮은 지지율을 민주주의적 경고로 이해하기는커녕,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는 교만으로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조롱하며 검·경찰을 동원한 정적 탄압과 공천개입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닌지.


물론 정권을 향한 다그침과 추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국가와 권력의 존재 이유를 묻는 주권자의 자기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주권자인 우리가 정권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부부의 날·성년의 날·바다의 날과 같은 이름을 붙여 오월의 나날들을 치장하는 데만 급급해할 것 아니라 어린이가 어린이답고, 어버이가 어버이답고, 스승이 스승답고, 부부가 부부답고, 성년이 성년답고,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존엄한 삶을 향한 주권자의 위엄으로 오월을 채워볼 일이다.

지난해 오월 윤석열 정부를 출범시킨 우리들의 오월이 역사 앞에 더 초라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헌법 앞에 덜 창피한 가정의 달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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