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87] 뉴욕필하모닉의 남녀 공용 화장실
뉴욕필하모닉의 연주장 ‘데이비드 게펜 홀(David Geffen Hall)’이 지난해 말 새 단장을 마쳤다. 무려 7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3년간 진행된 리노베이션이다. 쾌적한 분위기의 로비와 매표소, 층마다 마련된 식음료 시설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건 로비의 남녀 공용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흔히 작은 상가건물 등에서 볼 수 있는 세면대와 소변기, 칸막이가 설치된 그런 형태가 아니다. 그야말로 성정체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모두의 화장실(All Gender Restroom)’이다. 소변기는 없고, 입구에 세면대, 벽면 전체는 칸막이 속 양변기로 가득 찬 기존의 여자 화장실을 남녀 모두가 사용하는 방식이다. 가뜩이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때문에 피곤해하는 뉴요커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곳곳에서 불평의 소리가 들린다.
공연장의 경우 이런 화장실을 도입한 다른 이유도 있다. 장소의 성격상 화장실은 공연 전과 공연 직후, 그리고 인터미션(중간 휴식)에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흔한 현상이지만 늘 여자 화장실의 줄이 상대적으로 더 길다. 건축설계를 할 때 충분히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어김없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변수가 있다.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 등의 공연을 찾는 관객 수가 줄어들고 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클래식 공연 관객들의 연령이 예전보다 높아졌다. 노년 고객의 1인당 평균 화장실 사용 시간은 젊은 관객보다 조금 더 길다. 예전보다 화장실 대기 시간이 늘어나는 이유다. 그래서 남녀 공용이라는 불편함을 도입해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지난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장을 찾은 많은 한국인 관객들은 처음 경험하는 이 화장실에 특히 더 당혹해하는 모습이다. 입구에서 남성을 보고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바로 돌아나가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다음 학기 수업인 ‘공연장 설계’의 강의 구상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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